전진영기자
일본 편의점의 역사는 경제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일본 편의점 시장은 197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일본이 1960년대 고도 성장기를 겪으면서 경제 수준이 한 차례 올라선 때였다. 당시 국내총생산(GDP)은 2126억달러, 1인당 GDP는 2056달러였다.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았다. 한국에서 첫 편의점이 등장한 건 1982년이지만 개점 1년만에 폐점한 것을 감안하면 1989년 서울 송파구 오륜동 상가에 들어선 세븐일레븐 1호점을 시작으로 편의점 시장이 형성됐다고 볼수 있다. 당시(1986~1988년) 한국은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었던 시기다.
1973년 11월 마트 체인 이토요카도는 미국 편의점 체인 사우스랜드와 제휴를 맺고 요크 세븐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이것이 우리가 훗날 부르는 세븐일레븐 재팬이다. 요크 세븐은 1974년 세븐일레븐 1호점을 도쿄 고토구 도요스에 선보인다. 일본의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원년을 1974년으로 부르는 이유다. 여기에 1975년 미국의 식품업체와 협약을 맺고 있던 기업 다이에가 우유 가게에서 출발한 미국의 로손 편의점을 일본에 들여왔고, 유통기업인 세이유스토어가 자체 소매 체인의 이점을 살려 훼미리마트를 출점한다.
이렇게 시작된 편의점 사업은 일본의 경제성장기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대는 일본이 매년 4~5%씩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던 때였다. 1982년 기준 1인당 GDP는 9575달러, GDP 1조1350억달러를 기록했다. 편의점 산업도 이때 황금기를 맞는다. 일본 전역에서 세븐일레븐이 800곳, 로손이 380곳을 출점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제과업체부터 상사까지 기업들이 너도나도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면서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1982년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소매기업 상위 200대 기업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편의점 대기업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세븐일레븐 재팬이 81위, 로손이 95위였다.
1986년부터 일본은 버블경제로 부르는 초호화시기에 돌입한다. 1988년 일본의 1인당 GDP는 2만5059달러로 미국보다 높았고,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는 광풍을 일으켰다. 급성장하던 시장도 이때부터는 성숙기에 접어든다.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충분한 데다 어느 정도 편의점도 유통체인 등의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에 객단가 높은 고객을 맞이할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장시간 영업, 접근성, 신속한 쇼핑 등 말 그대로 '편리함'에 집중을 했지만, 이제는 질적 변화를 꾀할 차례였다. 배송체계를 정비하고 점원의 접객 교육 등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버블이 꺼지면서 산업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불황에 막 접어드는 시기였다. 1995년 4만4191달러를 기록했던 1인당 GDP는 경기가 침체되면서 3만2423달러까지 떨어졌다. 소비자들도 꼭 필요한 상품이 아니면 구매를 자제하게 됐고, 더 객단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업계는 '가격혁명'으로 불리는 염가 경쟁을 시작한다.
이 시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품이 편의점 주먹밥과 도시락이다. 세븐일레븐과 훼미리마트는 당시 연말연시 기간 한정으로 도시락과 주먹밥을 대폭 할인하는 이벤트를 펼쳤는데, 이것이 불황과 맞물리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사례가 널리 퍼지면서 너도나도 간편식에 힘을 쓰기 시작했고, '편의점=저렴한 한 끼'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그러나 무리한 출혈 경쟁 속에서 업계는 전반적으로 암흑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소형 업체에 이런 경기침체와 출혈경쟁은 경영 악화의 직격탄이었고, 이때부터 대기업과 중소업체 간의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다만 2008년 의외의 사건으로 편의점 업계는 호황을 맞이한다. 바로 담배 때문이다. 담배 자판기를 이용하려면 성인 인증을 위한 카드를 지참해야 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것이 귀찮은 고객들이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점에서는 담배 판매액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편의점이 아니라 동네 담뱃가게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 덕분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일본에서는 고령 고객을 잡고 술, 커피 등 기호식품 판매를 부쩍 늘리는 효과가 있었다.
이 시기부터 다시 신규출점이 증가하는 등 반짝 호황기가 시작되는 듯했으나, 니나미 다케시 당시 로손 사장은 "담배 효과는 언제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편의점은 이미 포화하고 있다. 앞으로 신규보다 기존 점포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며 황금기의 종식을 예고했다.
2020년대부터는 눈에 띄는 성장은 없지만 매년 1000점 이상 신규 점포가 나오는 등의 순증세는 이어졌다. 이처럼 편의점은 당시 경제 상황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고, 산업을 재편하는 등의 발 빠른 대응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맞이할 시기에서도 매출은 줄었지만, 그 성장세가 둔화한 적은 없었다. '편의점 시장 포화론'이 나와도 혁신을 거듭하면 된다는 희망론으로 마무리되던 시절이었다. 여전히 편의점은 은퇴한 5060 중장년이 인생 2막으로 선택하는 가장 매력적인 사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마냥 긍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기 어렵게 됐다. 계속되는 물가 상승으로 임대료나 전기세 등이 오르기 시작했고, 여기에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으로 인건비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돈키호테 등 드럭스토어까지 식료품 등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염가에 판매하며 위협적인 경쟁상대로 올라섰다. 이에 지난해 닛케이는 세븐일레븐 재팬 등 대형 편의점 3사를 상대로 한 자체 여론조사에서 편의점 3사의 총 신규출점 수가 전년 대비 21% 감소한 1040곳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래 최저 수치다.
최고경영자(CEO)의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편의점 왕국의 황금기는 저물었고, 이제는 생존을 위한 새로운 전략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미 2020년 사와다 다카시 훼미리마트 사장은 "안타깝게도 시장이 포화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기존 매장 손님 수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며 "완전한 포화 시장이라는 인식 아래 여러 경영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