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직의 역설…의료계 해묵은 과제 해결 실마리 찾나

수면 위 드러난 의료계 문제
대통령실 "진료지원 간호사 제도화"
비대면 진료 확대 전환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20일째인 10일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의료대란'으로 환자의 불편이 지속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정부가 의료대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의료계 해묵은 과제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에 과잉 의존한 대형병원 진료 시스템을 개편하거나, 숙련된 진료지원(PA) 간호사를 적극 활용해 근본적인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등 국내 의료체계 '정상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정부가 2000명 의대 증원 계획에 변함이 없음을 재차 밝힌 가운데 의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간 의료계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진료지원(PA) 간호사 역할 확대…의료 공백 장기화 대비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날 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해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보건의료기본법을 근거로 추진해나가고, 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보다 더 제도화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PA 간호사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전공의들의 이탈로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될 것을 대비한 조치기도 하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중대본)' 회의 모두발언에서 "전문의 중심으로 (의료기관) 인력구조를 바꿔나가는 한편, 숙련된 PA 간호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근본적인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함께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간호단체는 즉각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대한간호사협회는 "대통령의 의료개혁 지지 말씀은 의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현재의 의료체계 개편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후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런 일을 디딤돌 삼아 의료시스템이 더 발전적으로 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의료전달체계 바로 세우고 병원 전공의 의존 개선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전공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대형병원의 체계도 변화가 불가피함을 강력히 시사했다. 성 실장은 "수련의가 병원을 떠났다고 해서 시스템이 안 돌아가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다"며 "(대형병원 등에서) 전공의 의존 체계를 정상화하는 게 매우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 시내 상급종합병원 5곳(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은 전체 의사 인력의 34~46%가 전공의다. 인턴, 레지던트 등 수련 과정을 모두 마친 전문의가 병원의 중심이 돼야 하지만 각 병원이 비용 절감을 위해 전문의보다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전공의를 대거 투입하면서 전공의 이탈 시 의료체계가 마비되는 비정상적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서 '빅5 병원'의 전공의는 2745명으로 전체 의사(7042명)의 40%를 차지한다. 이에 정부는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인력을 확보하고 전공의에 과잉 의존했던 의료기관 구조를 전문의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부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는 그간 무너졌던 의료전달체계가 비로소 제 역할을 찾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경증환자는 동네 병·의원이 보고, 3차 병원인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운영돼야 하는 게 정상"이라며 "이번 의료대란이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환자만 보더라도 경영에 지장이 없도록 정책적 지원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도 전공의 이탈로 인해 오히려 본격화됐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난 뒤 규제가 강화되면서 비대면 진료 이용자가 줄었지만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다시 전환기를 맞았다. 이전에는 야간·휴일, 의료 취약지역 등 제한적 조건일 때만 초진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3일부터 비대면 진료 가능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병원 관계자는 "경증 환자 위주의 비대면 진료 확대로 의료기관의 혼잡도가 줄고 현장의 업무 부담이 준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평가했다.

정치부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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