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기자
지난 정부에서 확대된 초음파와 자기공명영상(MRI)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지난해 다시 좁히면서 검사 건수와 급여 지출 증가세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 이후 건강보험 지출 부담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의료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건강보험 지출을 관리해 재정 누수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8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상복부 초음파 검사 급여기준을 강화한 이후 관련 건강보험 실 지출액이 10% 이상 감소했다.
급여기준 강화 직전인 지난해 6월의 초음파 검사 건수는 145만6000건, 실 지출액은 871억원이었지만 급여기준 강화 후 3개월째인 9월에는 129만6000건, 763억원으로 각각 11.0%, 12.4% 감소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9월 감소세는 뚜렷했다. 2022년 9월 초음파 지출은 792억원이었지만 강화된 급여기준이 적용된 작년 9월은 이보다 30억원(3.7%↓)가량 감소했다. 진료 건수는 3.9% 줄었다.
다만 시행 초기인 지난해 7, 8월은 변화가 미미했다. 2022년 7월 853억원→2023년 7월 859억원, 8월 863억원→868억원이었다. 실제 개정 효과가 발생하기까지의 시차를 고려하면 3개월 차인 9월부터 급여기준 강화 효과가 나왔다고 건보공단은 분석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초음파 급여기준을 강화한 직후 2개월은 증가세가 정체됐고, 3개월째인 9월부터 30억원가량이 절감됐다"며 "의미 있게 줄어든 수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0~12월 자료까지 나와야 급여 기준 강화에 따른 효과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지만, 이 기간 급여 지출도 감소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당 건보 급여기준을 강화한 이유는 과잉 진료 억제를 통한 건보 재정의 '지속 가능성' 보장을 위해서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2026년부터 당기수지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에는 3072억원, 2027년에는 7895억원, 2028년에는 1조5836억원 등으로 적자 폭이 커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의료쇼핑 등 의료 남용을 줄여 의료 공급을 정상화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특히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2017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이 발표된 이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초음파·MRI 비용은 1891억원에서 1조8476억원으로 10배 증가했다. 초음파는 2018년 상복부, 2019년 하복부와 비뇨기, 응급중환자, 2020년 안구·안와, 2021년 흉부·심장 등으로 건보 적용을 확대했고 MRI는 2018년 뇌·뇌혈관, 2022년 척추 등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검사 과잉과 실질적 급여 기준 미비 등에 따른 재정 누수 우려가 나오자 정부는 작년 4월 제7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초음파 검사 적정 진료를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7월 상복부 초음파 검사부터 급여 기준을 강화했다. 상복부 초음파 검사는 상복부 질환이 의심돼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적용한다. 10월부터는 단순 두통이나 어지럼은 뇌·뇌혈관 MRI 급여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급여 기준 강화로 작년 초음파·MRI 실 지출비 증가세는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2021년~2023년·매년 1~9월 누계) 초음파·MRI 실 지출비 증가세를 비교해보면, 2022년에는 전년 대비 35.6% 늘었지만 2023년에는 4.7% 증가하는 데에 그쳤다. 뇌,뇌혈관 및 척추 MRI 실 지출비도 2022년에는 25.8% 늘었지만, 2023년에는 4.3% 감소했다.
정부는 올 상반기 중 하복부와 비뇨기 초음파검사도 질환이 의심될 때만 급여를 적용하도록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고령화에 따라 건보 급여지출은 증가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불요불급한 급여는 기준을 강화해 지출을 억제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