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기자
'원구일영(圓球日影)'은 둥근 공(원구) 모양으로 지구본처럼 생겼으며, 각종 장치를 조정하면서 어느 지역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지름 11.2㎝, 전체높이 23.8㎝ 정도 되는 '휴대용 해시계'다.
보물 제845호로 세종대왕 때 장영실 등이 제작한 '앙부일구(仰釜日晷)'에 가마솥(釜) 모양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해시계(日晷)'라는 명칭이 새겨진 것처럼 원구일영(圓球日影)이란 글자가 상단 반구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둥근 공 모양으로 어느 지역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한 조선 후기의 독특한 해시계 '원구일영(圓球日影)'. [사진=국립중앙과학관 제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두 개의 반구가 맞물려 각종 장치를 조정하면서 어느 지역에서나 표면의 시각표기와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를 통해 시간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부 부품이 없거나 고장 나 시간을 재거나 작동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의 한 경매장에서 구입·환수한 과학 문화재로 조선 말기 중추원(中樞院) 일등의관(一等議官)을 지낸 상직현(尙稷鉉)이 1890년에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매 당시 '일영원구(日影圓球)'라는 명칭으로 출품됐으나, 원구일영을 잘못 읽은 것으로 판별됐다.
원구일영은 어느 곳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장점 덕분에 한곳에서만 고정돼 시간을 측정하는 '앙부일구'보다 진전된 해시계라는 평가가 있으나,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12지신을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새긴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공중 해시계'인 앙부일구의 가치에는 비길 수 없다.
세종대왕 때 제작된 해시계 '앙부일구'.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이 그림으로 새겨졌다. [사진=위키피디아]
국립중앙과학관은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과 협력해 원구일영 복원과 함께 133년 만에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중앙과학관 연구팀은 원구일영을 복원해 특정 지역에 고정해두고 시간을 보는 기존 해시계와 달리 관측지점에 따라 위도가 달라져도 수평을 맞추고 그 지점 북극고도를 조정해 사용하는 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해그림자를 만드는 장치인 T자형 영침 그림자가 남반구 긴 홈 안으로 들어가게 맞추고, 이때 영침 끝이 지시하는 북반구 시각 표시를 읽는 방식의 휴대용 해시계임을 확인했다.
원구일영은 남북 극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원구형 해시계를 뜻하는 일영과 북극고도 조정장치, 받침기둥, 받침대로 구성된다. 원구일영 상단 반구 둘레에는 시각표기인 시각선이 표기됐다. 12시 십이지(十二支)가 새겨져 있고 매시는 초(初)·정(正)으로 이등분한 뒤 이를 다시 사등분해 8개 각으로 한 시를 나타낸다. 시는 지금 시간으로 2시간, 초와 정은 1시간, 각(刻)은 15분을 뜻한다.
유물 위도 조정장치(갈고리처럼 튀어나온 부분)에 표시된 2개 선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쓰인 지역은 서울을 기준으로 표시한 것임을 알아냈다. [사진=국립중앙과학관 제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상단 반구에 음각으로 십이지 중 인(寅)~술(戌) 9개만 표기되고 해(亥)·자(子)·축(丑)은 없다. 이는 해시계 특성상 측정이 불가능한 밤 시간대를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앙부일구'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연구팀은 원구일영 작동 원리를 밝히기 위해 제주와 대전, 서울 경복궁 등 지점에서 복원 모델의 시간 측정을 실험했다. 유물 위도 조정장치에 표시된 2개 선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쓰인 지역은 서울을 기준으로 표시한 것임을 알아냈고, 복원 모델의 시간 관측실험 결과 7분 30초 이내 오차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에는 중앙과학관 윤용현 과장과 한국천문연구원 김상혁·민병희 박사, 이용삼 전 충북대 교수, 기호철 문화유산연구소 길 소장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