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희기자
디지털 치료기기(DTx)와 인공지능(AI) 의료기기 등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의료 생태계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서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주최로 열린 '디지털헬스케어 콘퍼런스'에 모인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 김진우 하이 대표, 강성지 웰트 대표 등 3명의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 대표들은 일제히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이 실제로 성공하려면 다양한 생태계 속 플레이어들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고 다양한 협업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진우 하이 대표는 "연초에 페어 테라퓨틱스의 파산, 아킬리 인터랙티브의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두 개의 비보를 접하게 됐다"며 "절대로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김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디지털 헬스를 포함한 의료 시장의 특별한 산업 구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품 시장은 소비자가 판매자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고 제품을 구입한다. 하지만 의료 시장은 다르다. 최종 소비자인 환자 뿐만 아니라 보호자, 그리고 의사와 병원도 일종의 소비자로서 기능한다. 또 환자가 내는 돈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돈을 국민건강보험, 민간보험사 등의 지불자(payor)가 지급한다. 그는 "의료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의료서비스 제공자인 병원과 보험회사, 환자 및 보호자의 이해 관계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효용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며 "다른 플레이어들과 같이 이야기 나누고 어떻게 연결됐을 때 의미있는 비지니스가 될 지를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 역시 한국이 디지털헬스케어에 최적화된 사회라고 언급하면서도 중요한 지불 제도가 미비돼있다는 점을 짚었다. 황 대표는 "우리나라는 인력, 네트워크, 인프라, 기술 등이 좋고 국민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도 많이 지적받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좋다"며 "우리나라에서 못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못한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지불자가 없는 시장"이라는 아쉬움을 전한 황 대표는 "DTx의 보험 수가 등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수가가 충분히 책정되고, 원가를 보전할 수 있느냐에 대해 걱정이 많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치를 충분히 만드는 게 입증되면 글로벌하게 성장하지 않으면 연구소·학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기업의 지속가능성 면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황 대표가 글로벌 진출을 강조한 이유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하고 끝날 서비스가 아니라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시장에서 갈등이 없는 주요 플레이어를 조력자로 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카카오헬스케어는 구글 클라우드, 덱스콤, 로레알, 노보 노디스크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짚었다.
김진우 대표의 하이 역시 해외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하이가 내세우는 해법은 디지털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등 상용(商用) 기기를 통해 환자들의 생리적·심리적·행동적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잘 정리한다면 훨씬 더 쉽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실제로 이게 기술적으로 잘 되는지, 임상적으로 가능한지 등 검정(validation)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알츠가드', '리피치', '마음정원' 등 다양한 자체 서비스를 개발하는 한편 실제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제공하는 서비스인 '바이오마커.it'를 만들었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반응이 있어 실제로 수출이 이뤄졌다"며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원격 환자 모니터링(RTM)에 활용하면 간편해지는 만큼 현재 탐색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중에서도 규제기관의 역할을 강조했다. "디지털헬스케어가 가치를 지니려면 단순히 구전으로 전해지는 치료를 정제하고 검증, 표준화해 약을 만들었듯이 믿을 수 있어야 한다"며 신뢰성을 강조한 강 대표는 "DTx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 역시 규제기관으로 대변되는 국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0년 'DTx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시작으로 불면증, 중독장애 등 다양한 적응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있고, 미국은 식품의약국(FDA)가 선제적으로 제도를 마련한 후 보험제도에서도 '혁신 기술의 메디케어 보험급여(MCIT)'·'신기술의 과도기적 보험급여(TCET)' 제도가 마련되는 등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어 강 대표는 최근 대형 언어 모델(LLM) 같은 서비스를 업계에서 적용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LLM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개발 속도가 제대로 나려면 이를 관리하는 것도 AI를 써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식약처 가이드라인을 학습한 LLM을 자체적으로 테스트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