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준금리는 왜 범위로 나올까[송승섭의 금융라이트]

미국 기준금리도 원래 숫자였다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목표 달성 어렵자 범위금리 제시
"생소하지만, 더 현실적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이 5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도 기준금리 5.25~5.5%를 동결할 거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주목도가 높죠.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3.5%입니다. 숫자로 정해져 있죠. 그런데 미국은 범위로 표시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이를 이해하려면 미국의 기준금리 체계를 보다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상업은행들은 일정 비율의 자금을 연준에 예치해야 합니다. 대규모 인출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요. 이걸 지급준비금이라고 합니다. 돈이 많은 은행들은 그렇지 못한 은행들에 지급준비금을 아주 잠깐 빌려주는 것도 가능하죠. 물론 여기에도 이자가 붙습니다. 이렇게 은행끼리 초단기 거래를 할 때 적용되는 금리가 ‘연방기금금리’입니다. 연준이 발표하는 금리가 바로 이 연방기금금리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기준금리라고 부르는 것이고요.

또 하나. 연준의 기준금리는 목표금리입니다. 기준금리를 5%로 발표했다는 건 모든 거래에서 5% 금리를 획일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금리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합니다. 단 금리가 최대한 5%에 가까워지도록 중앙은행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죠. 만약 기준금리가 5%를 벗어나게 되면, 연준은 자산을 매각하거나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해 유동성을 조절하고 목표치인 5%에 맞추려 노력하게 됩니다.

미국도 원래는 한국처럼 기준금리를 단일 숫자로 제시했습니다. 기준금리를 범위로 제시한 건 2008년 12월 16일이 처음입니다. 당시 연준은 1%였던 기준금리를 ‘0~0.25%’로 조정했습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렸는데, 숫자가 아닌 범위로 발표한 겁니다. 지금이야 범위 금리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미국 중앙은행의 이같은 결정이 상당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배경에는 ‘페니메’와 ‘프레디맥’이 있습니다. 페니메와 프레디맥은 미국의 부동산담보대출 보증회사였습니다. 주택을 사고 싶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쉽게 돈을 빌리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졌죠. 미국 정부는 200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 구제금융으로 두 회사를 살려낸 대신 ‘이익금을 다른 자산에 투자하지 말고 단기금융시장에 공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막대한 자금이 금융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한 거죠. 시장에 돈이 확 늘어나다 보니 단기금리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실제 시장금리가 0.1%대로 떨어지기까지 했죠.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금리를 맞추기 어려웠고요. 그래서 연준이 아이디어를 하나 냅니다. 숫자보다 범위를 제시한 거죠.

즉 범위금리 제시는 목표를 더 쉽게 달성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기준금리가 특정 숫자라면 금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원칙적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겁니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범위라면 얘기가 다르죠, 범위 안에만 들어오면 ‘기준금리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시장의 상황을 더 잘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보면 연준 관계자가 범위 금리에 대해 “생소하지만, 더 현실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연준이 지급하는 이자와도 관련돼 있습니다. 미국 은행들은 연준에 일정 수준의 지급준비금을 강제로 넣어야 한다고 얘기했죠.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10월 긴급경제안정법이 시행됩니다. 해당 법에는 지급준비금을 의무보다 많이 넣은 금융기관에 예치금의 0.25% 이자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었죠. 그러니 기준금리가 0.25%만 돼도 사실상 제로금리의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편집자주경제와 금융은 어렵습니다. 복잡한 용어와 뒷이야기 때문이죠. 금융라이트는 매주 알기 쉬운 경제·금융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사전지식이 전혀 없어도 술술 읽히는 이야기로 경제·금융에 '불'을 켜드립니다.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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