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슬기자
출발부터 잘못된 걸까. CJ ENM 케이블 채널 tvN 예능프로그램 '어쩌다 사장' 시즌 3(이하 '어쩌다 사장 3')은 어쩌다 미국으로 향했을까. 시골 마을이 아닌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 '의도'가 궁금하다. 이 물음에 제작진은 선뜻 답하지 못하고 있다. 3편은 초심을 잃었다는 혹평이 나온다. 시청자가 열광했던 1·2편의 미덕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면서다. 해외인 한인마트로 향한 '당위성'도 찾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어쩌다 사장3'은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했다. 3편 제작 단계에서 미국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시청자들은 갸우뚱한 반응을 보였다. 시골 마을이 아닌 미국으로 향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촬영하는 '1박 2일'도 아니고, 촬영지 고갈에 시달렸을 리 만무할 터. '어쩌다 사장'은 고작 2개의 마을을 다녀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돌연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리나시티로 향한 것은 해외 시청자를 과하게 의식한 제작진의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류호진 PD는 미국 촬영 직전 팀원에게 공유한 편지에서 "미국 마리나에 남아있는 1세대 이민자 수가 많지 않다. 대부분 고령이고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의 자녀인 3세들도 큰 도시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후 그곳에서 정착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마리나로 촬영지를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어쩐지 설득이 되지 않는다. 이는 미국 마리나시티 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도시 진출은 우리나라 지역 전체가 고민하는 문제다. 그뿐만 아니라 '고령화 사회' 속 전 세계가 시름 하는 문제인데, 굳이 미국으로 향한 이유라고 납득하긴 어렵다.
유 PD는 "이제는 김치, 라면, 배추도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 속 사라져가는 '한인마트'의 귀함을 말하고 싶었다는 의도다. 무슨 말인가 싶다. 장소의 귀중함과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다면,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기능이나 정취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그런데 '어쩌다 사장3'의 배경이 된 장소는 제법 큰 규모의 잘 정돈된 신식 마트다. 다른 지역 마트와 비교해 규모도 꽤 큰 편인데, 굳이 '한인마트'의 중요성을 피력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3편에서 게스트 한효주를 제외하고 차태현, 조인성, 임주환, 윤경호 등 주요 출연진 중 영어로 소통하는 이는 없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한인마트니까 한국어로 소통하면 되겠지' 식으로 촬영에 임한 걸까. 촬영 전 연출자가 밝힌 나름의 '기획 의도'에서 언급한 지역의 이민 2~3세대의 문제를 조금만 들여다봤더라면,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걸 예상 못 했을 리 없다. 그런 제작진이 왜, 굳이 소통도 안 되는 출연진과 미국으로 로케이션 촬영을 나섰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어쩌다 사장3'은 무대를 넓혀 스케일을 키우느라 1·2편의 미덕을 지워버렸다. 국내가 아닌 미국으로 눈을 돌렸을 때 발생한 오류를 어떤 이야기로도 상쇄하긴 어려운 까닭이다. 1편은 차태현, 조인성 등이 시골 슈퍼에서 어르신과 동네 주민들을 마주하며 판매에 나섰다. 또 옆에 작게 마련된 '가맥집' 모습도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했다. 시골 마을의 고즈넉하고 잔잔한 풍경과 오래된 슈퍼를 보는 것만으로 힐링했다는 시청자 반응이 주를 이뤘다. 물론 시골 슈퍼에서 연예인을 발견하고 놀라던 주민들의 반응도 재미를 줬지만, 그보다 더 큰 매력은 잔잔하고 소담한 시골 풍경에 있었다.
말 그대로 차태현과 조인성은 어쩌다 사장이 됐다. 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계산도 허둥지둥하면서 모든 것이 서투른 '초보 사장'의 모습이 웃음을 줬다. 멋진 연기와 화려한 모습만 보여주던 완벽한 배우가 마치 시골 슈퍼에 떨어진 듯, 어쩌다 사장이 된 모습이 흥미로웠다. 서투르지만 하나하나 가격표를 익히고, 여유가 생기면서 마을 사람들과 교감하고 부대끼며 그들의 일상을 함께 했다. 그렇게 손님을 응대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진짜 사장이 되는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거창하지만, 이는 우리 인생과도 맞닿아있다. 누구나 인생에서 준비해서 맞이하는 건 없다. 어쩌다 직업을 갖고, 어쩌다 엄마 아빠가 되고, 또 누군가는 어쩌다 사장이 된다. 이는 공감과 힐링을 자아냈다.
2편에서 할인마트로 옮겨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지만, 지방의 마트에서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재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곳에서도 연예인의 출몰에 깜짝 놀라는 주민들의 모습은 반복됐다. 그들이 끓여주는 라면을 먹고 계산해주는 물품을 받아들며 기뻐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배경을 옮겼지만, 서울 수도권이 아닌 남쪽 조용한 마을이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볼 만했다.
1·2편은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웃음과 재미를 주는 예능이라는 점이 미덕으로 꼽혔다. 2편보다 1편을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3편 제작을 기다린 건 이러한 바람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시골 마을로 가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많은 이의 우려 속 출발한 '어쩌다 사장3'은 내용 면에서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전편에서 마트의 시스템에 적응한 배우들은 절실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현지에서 적응하려는 노력도 찾을 수 없다. 제작진은 필요에 따라 적절한 게스트를 배치했다. 1·2편에서 연예인의 깜짝 등장에 놀라는 주민들의 모습은 반복됐다. 슈퍼를 찾은 아이들의 모습을 비중 있게 다루는 건 어째서일까.
달라진 건 출연진의 모습이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같지만, 출연진은 계산을 배우며 헤매면서도 주민들에게는 "우리가 처음이라 이해해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다음날도, 다음다음 날도 이런 태도는 반복된다. 심지어 "카드와 현금 중 이왕이면 현금을 달라. 지금 직원 교육 중인데, 현금 계산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고 요구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미국 현지 주민들은 이를 이해하지 않는 모습이다. "사장이 교육도 안 하고 직원한테 계산을 맡겼다"고 한 소리 하거나, 전화를 걸어 "김밥의 밥이 덜 됐다. 딱딱하다"고 클래임(이의제기)을 걸었다. 사실 그곳 주민들이 '어쩌다 사장3' 촬영으로 생활에 불편을 겪는 걸 반드시 이해해야 할 이유는 없다.
결국 문제는 터졌다. 안일한 태도는 주방에서도 반복됐고, 위생 논란에 휩싸였다. 현지 슈퍼는 하루에 김밥이 수백줄씩 판매되는 '김밥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이를 '어쩌다 사장3' 팀이 몰랐을 리 없고, 현지답사 과정에서 이를 몰랐다 해도 문제다. 업주가 김밥 판매를 부탁하면서 현지 분위기와 단골 정보에 관해 전달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김밥 손님으로 분주할 것이라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당장 재료 준비에 급급했을 뿐, 어떤 대비도 하지 않았다.
제작진은 현지 주민들이 불편할 것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보다 예능적 재미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태도는 아쉽다. 시골 마을과 미국 마트를 찾는 고객은 문화와 생활 터전 자체가 다르다. 손님이 계산대에서 '사장님한테 일러야겠다'는 뼈 있는 농담을 하거나, '김밥의 밥이 덜 됐다'는 고객 클래임이 이어지는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김밥을 만드는 과정이 불량해 위생 논란도 불거졌다. 출연자 중에 김밥뿐 아니라 음식을 만들면서 마스크를 착용한 이는 없었다. 심지어 예능에서 흔히 쓰고 나오던 투명한 '입 가리게'조차 쓰지 않았다. 조인성은 머리 두건을 착용했지만, 다른 출연자는 머리를 가리지 않은 채 카운터와 주방, 김밥 만드는 곳을 오가며 어수선하게 김밥을 만들었다. 김밥을 만들면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깔깔거리며 웃고 한숨지었다. 김밥을 만들면서 재료와 김밥을 손으로 집어 먹으면서 노래도 불렀다. 2023년에 만들어진 방송이 맞나 싶다.
김밥 구매자들이 방송을 봤다면 얼마나 불쾌했을까. 그저 '연예인이 만들어준 김밥'이니 웃고 넘겼을까.
논란이 커지자 제작진이 밝힌 입장이다. 미국 현지의 위생 규정과 관련법을 지켰다는 해명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 때 입과 머리카락이 흐르지 않도록 가리고, 침이 튀지 않게 대화를 자제하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예능 베테랑들이 이를 몰랐을 리 없을 터다. 국내에서 촬영 준비 과정에서도 충분히 고려했을 일이다.
연예인들의 '얼굴'이 '위생'이나 '보건 안전'보다 더 중요한가. 그랬다면 다른 예능을 하는 게 더 나았을 뻔했다.
tvN 예능프로그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하 '콩콩팥팥')에서 '어쩌다 사장'의 초심을 본다. 평소 절친한 연예계 친구들인 배우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엑소 디오), 김기방이 함께 농사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이 함께 예능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뜻을 모아 나영석 PD에게 제안해 성사된 예능인 만큼 분위기는 편안하고 소탈하다.
흙이라곤 만져본 적 없는 도시 총각들이 농사에 도전한다. 맨땅을 어떻게 고르고, 뭘 심을지. 어떻게 물을 주며 키워가는지 온통 궁금하다. 온라인상 정보를 검색하기도 하고, 주민들의 도움을 구해가며 밭을 일궈간다. 특별한 콘셉트는 없다. 그저 농사짓는 예능이다. 친구들과 주말농장 가듯이 한 번씩 밭에 가서 물을 주고 농작물을 돌보고,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또 심는다.
그러다 식사 때가 되면 인근 마을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다. '도시 촌놈'인 이들은 로컬 음식점에서 (주로 한식) 밥을 먹으면서 감탄을 연발한다. 그러면서 "여기 무조건 한번 또 오자" "이거 먹어봐라. 맛이 미(美)쳤다"며 정신없이 들이킨다. 때로는 밭에서 수확한 깻잎, 가지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직접 수확한 페퍼민트 잎으로 차를 끓여 먹거나, 깻잎으로 모히토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대접하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무성해진 잡초를 뽑아야 하는 상황도 웃음을 준다. 초보 농사꾼들이 잡초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랐던 상황. 방치하면 옆 밭에 피해를 줄 수 있어 급하게 잡초 뽑기에 나선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더운 날은 더운 대로 자연과 싸우면서 밭을 일궈간다. 어느새 초록으로 물든 밭을 보며 크게 환호한다.
'콩콩팥팥'은 프로그램이 표방한 것처럼 '무공해 힐링 예능'이다. '인간극장'처럼 달린 자막에서 알 수 있듯이 초보 농사꾼들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표방한다. '예능꾼' 이광수는 영리한 완급조절로 웃음도 상당하다. 주로 배우로 활동해온 도경수, 김우빈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오고, 김기방의 존재감도 한몫한다.
마치 유튜브 브이로그처럼, 틀어놓고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예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나영석 PD는 "요즘 진한 예능이 많은데 우린 힘을 뺀 심심한 맛이다. 우리 예능은 '밥 친구'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예능이다. 많은 분이 열광하지 못해도 친근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의도가 통한 것이다.
물론 '콩콩팥팥'은 사실상 '어쩌다 농부'라고 이름을 지어도 어색하지 않다. 흙이라곤 만져본 적 없는 도시 총각들이 '어쩌다' 농부가 되어 수확의 기쁨을 느낀다. 밭에서 난 '내 새끼' 같은 농작물이 얼마나 귀중한지, 그 가치를 깨닫는다.
'콩콩팥팥'도 언젠가 '어쩌다 사장3'처럼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좋겠다. 초록의 밭과 긍정적인 바이브를 내뿜는 초보 농부 4인방 이광수·김우빈·김기방·도경수의 사랑스러운 활약과 가공되지 않은 '찐 먹방'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