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기자
"선거(내년 총선)가 다가오니까 표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하는 거지. 아예 전국을 전부 서울시로 만들지 그래?"
서울시 노원구 상계2동 당현천 인근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던 강모씨(79)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옆에서 좌판을 펴고 장사 중인 이모씨(81)가 김포시를 서울로 편입하려는 국민의힘의 '메가서울' 추진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자 강하게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씨는 "(코로나19 당시)서울시가 재난지원금을 10만원 줄 때, 경기도는 30~40만원 줬다"면서 "경기도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느냐"고 했다.
지난 2일 찾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만난 주민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꺼내든 김포시의 서울 편입 추진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다. 상계동이 포함된 노원병 국회의원 선거구는 대표적인 진보세가 강한 지역구이다. 현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재선의 김성환 의원이고, 노회찬 의원이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한 지역구가 바로 이 곳이다.
하지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20대 총선부터 내리 삼수(보궐선거 포함)에 도전한 지역구여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초미의 관심을 받고있다.
노원구는 현재 갑을병 지역구 현역 의원을 모두 민주당이 석권했고, 구청장도 민주당 소속일 정도로 야당의 텃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20대 총선부터 노원병에서 표밭을 다지면서 보수 지지율도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이 전 대표의 경우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44.36%라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노원병에서 역대 보수정당 후보 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 지역구에서 유일하게 당선됐던 보수 계열 의원인 홍정욱 당시 한나라당 의원(18대 총선 43.10%)의 득표율보다 높은 수치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결과에서도 미묘한 민심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노원병에서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은 54.71%로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41.54%를 크게 앞섰다. 2022년 대선 득표율은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윤 대통령보다 높았지만, 1.06%포인트라는 근소한 차이였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지역구 주민들의 평가도 호의적이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모씨(63)는 "원래 민주당 강세 지역인데, 요즘은 여당이 좀 비등비등하게 올라온 것 같다"며 "이준석 전 대표는 참 똑똑한 사람인데 당을 잘못 탔다"고 했다. 청년 정치인인 이 전 대표에 대한 2030 세대의 호감도 두드러졌다. 인근 대학에 재학 중인 홍모씨(22)는 "이 전 대표가 비교적 젊은 후보인만큼 청년들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 전 대표가 출마하면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상계동에서 20년간 자영업을 했다는 조모씨(65)는 "저는 옥천이 고향이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좋아한다"면서 "이준석 전 대표는 전에는 아주머니들이 좋아했지만, 요즘에는 말을 함부로 한다는 비판도 받고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전 대표는 최근 신당 창당을 본격화하면서 현재 이 지역구 출마가 불투명하다. 이 전 대표는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여의도재건축조합'에서 "12월 말까지 당에 변화가 없으면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신당 창당을 시사했고, 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와 진보진영 인사까지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준석 전 대표는)당원권 정지 상태였기 때문에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이 전 대표가) 출퇴근하는 길마다 (지역) 사람들은 만나게 된다"며 앞으로의 지역 활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내년 총선에서 노원병 출마가 거론되는 야권 인사는 지역 현역인 김 의원을 비롯해 이은주 정의당 의원, 홍기웅 진보당 노원병 당협위원장 등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해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이후 노원병 당협위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뒀다.
김성환 의원은 노원에서 태어나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정치 인생 대부분을 노원에서 보냈다. 민선 1기 노원구의원부터 시작해 노원을 지역구로 둔 서울시의원을 거쳐 노원구청장을 두 차례나 역임했다. 김 의원은 최근 매일 노원구 각종 축제 등 지역 행사에서 챙기면서 주민들과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이은주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4호선 당고개역, 상계역 등 지금의 노원병에서 지하철 역무원으로 일한 인연이 있다. 이 의원은 2021년부터 노원에 사무소를 만들고 지역 활동에 힘쓰고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국정감사 기간 중에도 금요일과 주말은 계속 지역 모임 행사에 참석했다"며 "본격 선거 운동 기간은 아니기 때문에 당원 모임 등"이라고 설명했다.
홍기웅 후보는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재학할 때부터 노원에 터를 잡았다. 홍 후보는 진보당의 핵심 전략인 '봉사활동 선거전'을 이어왔다. 올해 보궐선거로 원내에 입성한 강성희 진보당 의원(전주을)은 선거를 앞두고 온 당원이 전주에 내려가 쓰레기 줍기 등 봉사활동을 하며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홍 후보는 "지난 주 봉사에는 당원이 아닌 일반 주민분도 참석했다"며 "보통 정치인들은 먼저 주민들을 찾아가 말을 거는데, 봉사를 하고 있으면 주민들께서 먼저 말을 걸고 다가오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노원 선거구 합구가 내년 총선 최대 변수로 꼽고있다. 노원 지역의 인구 감소로 갑·을·병 3개 지역구가 2개로 통합 조정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현재 세 곳 모두 민주당 의원인 탓에 지역구가 합구되면 민주당 경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른 정당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