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코드:마약중독]①'언제든 끊을 수 있을 줄 알았죠'…'치유 중' 청년 4인의 회복기

경기도 다르크에서 만난 회복청년들
평범한 삶 꿈꾸며 '단약' 매진
"중독 후 끊기 어려워…시작조차 말아야"

지난달 27일 오후 경기 양주시 일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그룹홈 형태의 마약·약물 중독 재활치유센터 '경기도 다르크(DARC)'에서 단약을 위해 노력 중인 20대 청년 4명을 만났다. 누군가는 호기심에,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누군가는 마약인 줄도 모르고 마약에 접했다. 단 한 번의 투약은 '딱 한 번만 더'가 됐고, 결국 매일 약에 취하게 됐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처음부터 자신이 매일 약에 취해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진 않았다. 인생의 꿈과 목표가 마약에 잠식됐던 이들은 이곳에서 재활에 몰두하며 다시금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접한 마약, "언제든 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민재원씨(21)는 경기 다르크 입소 후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아나가고 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민재원씨(21·남)는 마약을 처음 접했던 19세의 자신을 다시 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한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뗀 그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고 통제가 가능한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면서도 "차라리 그때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앞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민씨는 고3 수능을 치기 전 이미 마약을 경험했던 전 여자친구로부터 처음 필로폰을 접했다. 민씨가 마약을 투약하게 된 것은 단순 호기심보다 ‘이게 뭔데 여자친구를 망가뜨린 거지’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이때만 해도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마약을 그만둘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마약은 계속됐다. 마약에 취해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많아지고, 민씨를 찾는 부모님의 연락도 잦아졌다. 마약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에게 “이제 그만 마약을 하고 싶다”고 얘기도 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단약을 시도했지만 계속 다시 마약을 하는 자신이 힘들어 ‘삶을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했다.

주현성씨(25·남·가명)는 미국 유학 중이었던 2015년 마약을 처음 접했다. 주씨는 생일 축하 파티에서 한국 형이 건넨 대마를 받았다. 대마로 시작한 마약은 엑스터시, 필로폰으로 점점 범위가 넓어졌다. 2019년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도 마약을 끊지 못했다. 미국보다 마약 입수가 힘들어지자 직접 이태원으로 나가 구매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힘들어지자 온라인 메신저로 마약을 구매했다. 그 당시 주씨는 매달 받던 용돈의 전부를 마약에 썼다. 2020년 경찰에 마약 투약 사실이 적발되고도 끊기 어려웠다. 주씨는 "마약을 하는 기간 방 안에서 마약만 하고 지냈다"고 말했다.

이수정씨(28·여)는 함께 마약을 했던 주변 사람들을 잃었다. 열다섯살에 미국에서 만난 남자친구, 성인이 돼 만난 남자친구는 마약을 판매해왔다. 이씨와 함께 마약을 했던 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이씨는 "마약을 많이 하다 보니 정신적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씨도 한창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

남명우씨(27)는 지난 2월 경기 다르크에 입소해 8개월째 단약 중이다. 처음 입소 생활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마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고 한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남명우씨(27·남)의 경우 자신이 마약을 투약하고 있는지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남씨는 지난해 6월 토양환경 관련 회사에서 중장비를 운전하며 주로 2인 1조로 움직였다. 허리가 자주 아팠던 그는 같은 조 동료가 "이걸 맞으면 집중도 잘 되고 통증도 많이 사라진다"며 추천한 '비타민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실은 필로폰이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이미 중독된 후였다. 실제로 통증이 나아지는 듯해 하루에 2~3차례 이 동료를 통해 마약을 투약했고, 그렇게 한 달째가 되던 때 동료는 남씨에게 주사한 것이 마약이라고 고백했다. 남씨는 "처음에는 (동료를) 원망했지만, 약이 더 좋으니까 더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동료는 "약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아는 후배가 마약을 갖고 있는데 사려면 돈을 줘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남씨는 마약 구매에 빠지게 됐다.

마약 투약 사실을 직장에서 걸리게 돼 회사에서도 나오게 된 지난해 9월부터는 우울함, 불안함에 매일 마약만 하고 살게 됐다. 결국 남씨는 부모님 자택에서 체포됐다. 마약에 다시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지만 경찰 조사 이후에도 또 마약을 찾게 됐다. 결국 두 달 만에 일하면서 벌었던 돈은 다 쓰고 9300만원의 빚도 생겼다. 지난 9월 남씨는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징역 5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남씨는 자신의 경험을 돌이키며 "(마약에 대해) 경계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하지 말라'는 식의 교육이 아니라 마약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법적 처분을 받는지, 마약을 한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같은 구체적인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아빠와의 약속"…평범한 삶 꿈꾸며 재활에 매진

마약을 접하게 된 계기는 4명의 청년 모두 달랐지만, 현재의 목표는 모두 같다. ‘단약(약을 끊는 것)’이다. 이들은 경기도 다르크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다시 자신의 중심을 찾아 나가고 있다.

주현성씨(25·가명)는 마약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이씨는 '빠삐(스페인어로 아빠)'와의 단약을 약속하고 이날이 입소 5일차라고 했다. 이씨의 어릴 적 꿈은 연예인이었다. 그러나 마약에 취해 꿈은 뒷전이었고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제 이씨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떨어져 살다 보니 아빠로부터 전화를 자주 받았는데 그때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며 "아빠가 한국에 들어오시면 내가 챙겨드리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꽃을 좋아하는 이씨는 꽃과 관련된 장식품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자 낮고 엄한 톤으로 "하지마, 제발"이라고 말했다.

남씨는 지난 2월 입소해 8개월째 단약 중이다. 이전에도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남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는 정신과 외래진료를 다녔다"며 "낮에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지만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밤에는 자유시간이 되니 통제할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서는 동료들과 서로 통제해주고 규칙적인 생활도 이어가고 있어 단약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입소하고 3개월 동안 갈망(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와 ‘이곳을 어떻게 몰래 나가지’라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도 했다. 마약 후유증 때문이었다. 남씨는 "마약 후유증으로 사람들을 의심하고, 감시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남씨는 이곳에서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마약을 할 때 몸무게가 65㎏까지 내려갔지만, 지금은 80㎏으로 이전의 몸을 회복했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교육받고, 운동하고, 잠이 들기를 반복한 결과 지금은 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민씨는 마약을 매개로 알게 된 사람들과 연을 끊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이불 정리하기 등 다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하는 규칙적인 생활조차 민씨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민씨는 "마약을 하면 신체 기능이 약화돼 소화가 잘 안 된다"며 "운동을 하며 기능을 되살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활 9개월째인 주씨는 단체생활이 쉽진 않지만 '마약 없이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씨는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의 '평범한 삶'에 대한 소망은 분명했다. 주씨는 마약에 호기심을 가질 누군가에게 "마약을 시작하면 아주 오랫동안 마약에만 빠져 살고, 그 후에는 마약을 끊고 정상적으로 생활하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며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사회부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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