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지구를 오가거나, 달·화성을 탐사할 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에너지 공급이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나 무선으로 전력을 충전 받을 수 있다면? 먼 미래 기술인 줄로만 알았던 우주태양광발전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실용화될 전망이다. 미국과 영국이 아이디어가 나온 지 수십 년 만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앞선 중국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차근차근 준비 중이며, 일본도 2030년대 실용화로 일정을 앞당겼다. 우리나라는 아직 기초 연구 단계인데, 신재생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망설이던 우주 강국들이 최근 우주태양광 발전에 적극적으로 돌아섰다. 그랜트 샤프스 영국 에너지안보부 장관은 지난 12일 개막한 런던 테크위크 행사에서 총 430만 유로(약 60억원)를 우주태양광 발전 R&D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돈은 우주용 초경량 태양광 패널을 개발 중인 케임브리지대, 원거리 무선 전력 송수신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런던 퀸 메리대 등 산ㆍ학ㆍ연에 골고루 투자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샤프스 장관이 "위성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해 지구로 송신하는 기술은 영국 에너지 안보를 증대시킬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이 있다"면서 "이 새로운 우주 경쟁에서 승리하면 영국은 전력 공급 방식을 바꿔 다음 세대를 위해 더 저렴하고 깨끗하며 안전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의 이같은 투자는 예견됐었다. 2021년 발표된 공식 보고서에서 영국 정부는 2050년까지 10기가와트(GW)의 전력을 매년 우주에서 생산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현재 영국 전체 전력 수요량의 4분의1에 해당한다. 산업 파급 효과도 수십억파운드에 달하며 14만3000여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예상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스페이스 에너지 이니셔티브(Space Energy Initiative) 컨소시엄을 구성해 카시오페이아(CASSIOPeiA) 태양광발전 위성 개념을 개발하고 있다. 저궤도에 4~5개의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발전위성을 띄워 비용을 절약하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미국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 하원 과학우주기술위원회는 지난 14일 내년 예산안 중 미 항공우주국(NASA)와 에너지부(DOE)간 핵심 R&D 협력 과제 리스트에 우주태양광발전도 포함시키자는 수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현재 수준의 우주태양광발전 아이디어가 제기된 1970년대 이후 5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수정안이 하원 본회의와 상원을 거쳐 확정되면 NASA 등 미국 정부ㆍ연구기관들의 관련 연구가 공식화ㆍ본격화될 전망이다. 사실 미국도 NASA와 국립해양대기국(NOAA) 등이 관련 원천 기술들을 이미 상당수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NASA는 보잉사와 함께 10년 전부터 운영 중인 비밀 임무 우주선 X-37B에서 비밀리에 우주 전력 무선 송수신 관련 연구를 수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NASA는 지난해 열린 국제우주개발회의(ISDC)에서 우주태양광발전에 대한 가치 평가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연구보고서는 이달 말 내지는 다음달 발표될 예정이다.
일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말 일본의 우주태양광발전 연구 민관 협력 프로젝트는 이르면 2025년 우주 전력 송수신 실험을 위한 소형 위성들을 개발해 발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2000년대부터 이미 관련 원천 기술을 개발해왔다. 2015년엔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5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1.8kW 크기의 전력을 무선 전송해 전기 촛불 1개를 점화하는 실험에 성공한 적이 있다. 일본 정부는 2030년대 약 70억달러를 투자해 1GW급 우주태양광발전 위성을 쏘아 올려 실용화한다는 계획이다.
가장 앞선 것은 중국이다. 이미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지난해 완공한 자체우주정거장 '톈궁'에서 2028년까지 전력 전송 기술을 시연ㆍ개발하고 있다. 2035년까지 10메가와트급 위성을 고도 3만6000km의 정지궤도에 발사하고, 2050년까지는 2GW급을 실용화할 계획이다. 이밖에 유럽우주청(ESA)도 지난해 12월 '솔라리스' 계획을 승인해 2040년까지 2GW급 우주태양광발전소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주태양광발전은 대기 산란 효과가 없고 24시간 발전이 가능하다. 지구 표면보다 8배 이상 효율이 높다. 전력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무선 전력 송ㆍ수신을 통해 지구는 물론 달, 화성에서도 인프라없이 전기를 보낼 수 있다. 간단한 장치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무한 전력 공급을 받을 수 있다. 전쟁터나 재난 지역의 긴급 공급용으로도 최적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기술 개발과 효율과 안전성, 비용이다. 그러나 점점 실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주 강국들이 최근 본격 투자에 나서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사상 처음으로 우주에서 무선 전력 송수신 실험이 성공했다. 캘리포니아공과대는 지난달 말 올해 1월 발사한 우주태양광발전시연위성(SSPD-1호)이 전력 무선 송수신 시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초경량 유연 태양광패널로 생산한 전력을 마이크로파로 바꿔 위성 내부에서 송ㆍ수신해 LED 전등을 밝혔다. 마이크로파를 지구에 보내 수신하는 시연도 실시했다. 이 기술이 실제 우주 공간에서 실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수신 효율이 여전히 걸림돌이긴 하다. 현 기술로는 전력을 마이크로파로 바꾸는 과정에서만 40%나 손실이 발생한다. 최준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책임연구원은 "우주ㆍ대기권을 통과하거나 마이크로파를 전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10~20%로 의외로 적다"면서 "직경 1km의 우주태양광위성을 띄울 경우 수신 안테나의 넓이를 4㎢ 정도로 만들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장 큰 과제는 전력을 마이크로파로 변환하면서 발생하는 대규모 손실을 줄이는 것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전성 문제는 사실 큰 도전은 아니다. 가정용 전자레인지도 사용하는 상황에서 마이크로파의 인체 유해 여부는 아직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위험하더라도 정해진 수신기지국 근처에만 출입을 통제하고 보호장비를 갖추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최 책임연구원은 "석탄 화력 발전으로 나오는 미세먼지는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마이크로파는 정해진 곳만 피하면 되고 얼마든지 차폐도 가능하다"면서 "위도가 높고 날씨도 좋지 않은 한국의 경우 현재 기술 수준에선 우주태양광발전이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용의 경우 재활용ㆍ대형 로켓의 등장으로 예상보다 급격히 빨리 해소될 전망이다. 1GW급 우주태양광발전위성을 구축하려면 최소 1만t 가량의 자재와 장비를 실어 날라야 한다. 엄청난 돈이 드는 수천번의 로켓 발사가 불가피해 1970년대만 해도 1kW급 우주태양광발전소 구축에 최대 1조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발사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미국 민간우주업체 스페이스X의 팰컨헤비는 현재 1kg당 발사 비용을 1400달러대로 낮췄다. 앞으로 1회당 150t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스타십(starship)이 완성될 경우 훨씬 더 저렴해진다. 특히 장기적으로 지구 저궤도에 미국이 구상하는 루나게이트웨이가 건설되고 달에 장기 거주 기지 및 생산 시설을 구축할 경우 우주태양광발전소 같은 거대 구조물에 드는 비용ㆍ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초보 단계지만 상당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무선 전력 송ㆍ수신 개발에 착수해 4.8kW급 전력을 100m까지 보내는 데 성공했으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항우연)과 함께 위성 무선 전력 송수신 시스템을 설계해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우주개발행사에서 시연해 보였다. 특히 빠르게 움직이는 목표를 정확히 포착해 전력을 송수신할 수 있는 정교한 기술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KERI와 항우연은 2029년까지 소형 위성 2개를 제작해 우주에서 전력 송ㆍ수신 기술을 시연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아직 국가 차원의 우주태양광발전 R&D는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없다. 이상화 KERI 책임연구원은 "고용량의 반도체 기반 무선 전력 송수신 체계에 대한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며 "우주 시연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왔고, 현재 위성에서 지상으로 전송하는 기술도 연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산 부족으로 대용량화나 위성 개발 같은 실용화 연구는 아직 진행하지 못한 상태"라며 "조기 상용화하려면 보다 많은 투자와 함께 관계 연구기관ㆍ연구자 간 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