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실행 불가능한 '응급실 뺑뺑이' 대책

대학병원 방향으로 사이렌을 울리다가 중앙선을 밟고 역회전 질주하는 구급차가 전국에서 매일 스무 대다. 응급실 매치가 안 돼서 도로를 헤매거나, 최초 도착 응급실이 환자를 못 받아 재이송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2021년 한 해에만 7634건 발생했다. 환자가 살아있을 때 응급실에 도착한 경우만이다. 구급차 안에서 뺑뺑이 돌다가 비극을 맞은 사람은 별도다.

정부는 응급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낡은 녹음기를 튼다. 지난달 31일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서도 앵무새가 대책을 읊었다. 보건복지부 캐비넷에서 수차례 나왔다가 들어갔던 재탕이다. 애초 실행을 못 했고, 이번에도 실행할 수 없는 비현실적 탁상공론이었다. 응급의료서비스를 응급환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정부·여당의 관치 습성 탓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장과 보건복지부 관리들이 이날 서랍에서 꺼낸 첫 번째 대책은, 상급병원 응급실 경증환자 수용 제한이다. 응급환자 입장에서 보자. 경증이라며 거부당했다가 사망했는데 알고 보니 중증이었다면 억울함은 어떻게 하나? 정부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중·경증환자 이원화 확대’는 실행 불가능하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정부·여당의 두 번째 대책은 '빈 병상이 없으면 경환자 중 한 명을 빼내고 새 응급환자를 무조건 받게 하겠다'로 요약된다. 기존 응급환자 입장에서 보자. 당신보다 중증 환자가 왔으니 병상 내놓고 나가라면 순순히 희생해야 하나? 무엇보다 이 발상은 의료법상 기존 환자 진료거부 금지 정면 위반이다. 복지부가 얼마나 날림 대책을 만들어 여당에 보냈고, 정책위원장은 써준 대로 읽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당정협의회에서는 안 꺼냈지만, 언제든 다시 나올 약방의 감초가 ‘상급병원 응급진료비 추가할증’이다. 응급 질환 또는 손상은 발생 30분 이내 치료 시작 여부가 생명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 응급환자 입장에서, 아파 죽겠는데 비용 따져보고 작은 응급실을 골라 갈 수 있나? 상급병원 응급실은 이미 중소병원보다 훨씬 비싸다. 할증률을 더 높이면 큰 병원 수익만 따라 올라간다.

정부·여당이 쳐다보지 않는 응급환자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응급실 접근성이다. 응급실이 가까이 있으면 경환자는 물 흐르듯 분산된다. 그런데 이미 있던 중소병원 응급실도 복지부가 응급실 당직법을 시행한 2012년부터 계속 쓰러지고 있다. 이 법 부작용으로 응급실 적자가 심화하면서, 2012년 458곳이던 응급의료기관은 지난해 405곳으로 10% 넘게 줄었다.

정부·여당은 중소병원 응급실이 적자 걱정 없이 다시 불을 켜도록 해야 한다. 소방차가 출동하지 않아도 소방서 예산은 나오듯, 응급의료만큼은 내원 환자 수에 연동하는 행위별 의료수가의 예외로 빼면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이 방식을 제안한다(응급의료 수가 개선 현황 및 과제, 2020). 그러면 정부와 여당이 국민을 상대로 “경증은 상급병원 이용을 금지하겠다”고 엄포를 놓거나 “할증료를 더 물릴 테니 작은 병원으로 가라”고 등 떠밀 필요가 없어진다.

사회부 이동혁 기자 do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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