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송승섭기자
올해 한국 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채우기 위해 돈을 빌릴 필요가 없을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유럽 국가들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파급력이 적은데다,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로 재정지원에 따른 부채압박이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채 전망 2023’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순차입필요액(NBR·Net Borrowing Requirement)은 -0.7%로 예측됐다. 순차입필요액이란 한 나라에서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국가가 빌려야 하는 돈의 양을 말한다. GDP 대비 순차입필요액이 10%라면 GDP의 10%만큼 빚을 내 예산을 충당해야 한다. 이 지표가 마이너스라는 건 그만큼 지출해야 할 돈이 적거나 한 해 예산이 크게 부족하지 않아, 정부가 빚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GDP 대비 순차입필요액 비율은 한국이 가장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 2021년만 해도 관련 지표가 5.9%에 육박했었다. 그해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 GDP의 5.9%에 달하는 규모로 빚을 냈다는 뜻이다. 당시 OECD 평균인 3.6%보다 높고, 회원국 중에서 7번째로 많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은 2.6%로 관련 지표가 절반 넘게 줄어들었고, 올해는 마이너스로 돌아설 예정이다.
-0.7%는 OECD 38개국 중에서도 네 번째로 낮은 수치다. GDP 대비 순차입필요액이 가장 낮을 것으로 전망된 국가는 -1.6%를 기록한 스웨덴이었고, 다음이 덴마크(-1.5%), 코스타리카(-1.2%) 순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전년 대비 부채압박이 다소 커질 것으로 추정된 국가였다. 전년보다 부채압박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 나라 중에서는 한국의 감소폭이 가장 컸다.
OECD 국가들은 2021년 평균적으로 자국 GDP의 3.6%에 달하는 빚을 예산 충당에 썼지만, 지난해 2.3%로 1년 만에 1.3%포인트 감소했다.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줄어드는 등 판데믹 국면이 수습단계에 접어들면서 전염병 지원에 정부가 써야 할 돈이 줄어서다. 예상보다 세입여건이 빠르게 회복된 점도 작용했다. 하지만 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주요국들이 가계와 기업보호를 위해 재정지원을 확대하면서 다시 2.6%로 상승했다.
OECD는 “최근 2년간 GDP 대비 순차입필요액이 0.5%포인트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12개국 중 10개국이 유럽”이라면서 “이는 식량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으로부터 가계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된 재정지원 조치를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2개국의 GDP 대비 순차입필요액은 코로나19 대유행 전보다 평균 2배 이상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OECD가 한국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배경에는 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가 자리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순차입필요액의 증감은 대부분 각국의 재정지원정책과 연관돼 있다.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 때만 해도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각종 지원정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윤 정부에서는 코로나19로 방만하게 늘었던 지출을 줄이겠다며 재정준칙의 법제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불투명한 세수여건이 걸림돌이다. 정부는 1분기 기준 87조1000억원의 국세를 걷었는데, 전년보다 24조원 줄어든 규모다. 이대로면 연말 30조원에 달하는 세수가 부족할 거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이미 편성한 예산을 사용하지 않거나 다음 해로 넘기는 ‘예산 불용’에 나설 거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