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온유기자
"2021년 말 전셋값이 고점을 찍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올해 말 역전세 피크가 올 수밖에 없다."(채상욱 커넥티드 그라운드 대표)
서울 아파트에 막 도달한 역전세난이 하반기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나온다. 서울 전셋값 고점이 2021년 7~12월에 집중돼있어, 계약이 만료되는 올해 하반기 역전세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6월 입주 물량이 5000가구가 넘고, 실거래 의무 폐지 추진으로 전세 공급이 많아질 수 있다는 점도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30일 아시아경제가 서울 자치구별로 세대수가 가장 많은 아파트 25곳의 전셋값을 추적한 결과 대부분 2021년 하반기 최고가 집중도가 높았다. 특히 9월과 10월에 가장 많았다. 9월에는 강서구 강서힐스테이트(9억원), 관악구 관악드림타운(7억2000만원), 동작구 신동아리버파크(7억7000만원), 중구 남산타운(8억5000만원)이 각각 최고가를 경신했다. 10월에는 동대문구 래미안위브(9억원),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11억7000만원), 서대문구 DMC파크뷰자이(12억원), 서초구 반포자이(22억원), 양천구 목동신시가지14단지(9억원)이 최고가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2년이 지나 해당 고점 계약이 만료되는 올해 하반기 역전세난 규모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새로운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는 사례가 만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 계약 사이클을 고려하면 올해 하반기 역전세에 해당하는 규모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면서 "전세가격은 이미 매매시장과 같이 크게 조정을 받았기 때문에, 전셋값 하락의 깊이가 깊어지기보다는 역전세의 넓이가 넓어져 피해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5월 넷째 주 기준 1년4개월 만에 상승전환하며 안정세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하반기 역전세와 더불어 국회에 계류 중인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 여부 역시 전세 시장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거주 의무가 없어지면 전세 공급이 증가해 또다시 가격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달 서울에서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것도 전세 시장 불안정 우려를 키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5월 0건인 서울 입주물량은 6월 5118가구로 늘어난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롯데캐슬시그니처(1163가구)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청량리역한양수자인192(1152가구) 등이 집들이를 앞두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입주물량이 전월 대비 크게 늘어나는 만큼 전세시장에 미치는 하방 압력이 상당할 전망"이라며 "역전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하반기 서울 입주물량이 상반기보다 적어 전셋값을 끌어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상반기 1만3578건에서 하반기 9480건으로 줄어든다"면서 "전셋값 하락폭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하반기 역전세난 확산이 현실화한다면, 겨우 거래절벽에서 벗어난 서울 부동산 시장이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 시장 침체는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실물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전세 시장 안정화를 위해 집주인에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팀장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로 제한되면서 임대사업자는 규제에 막혀 보증금 반환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유동성이 막혀 보증금을 내어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비율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