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주식거래 전수조사 또 전시행정?

라덕연 일당의 주가 조작 사태로 자본시장이 어수선하다. 라덕연씨를 비롯한 시세조종 일당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시장감시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금융당국도 책임을 피할 순 없다.

사태가 터진 지 한달여 만에 금융당국이 첫 대책으로 꺼낸 카드는 ‘전수조사’다. 조사는 투 트랙으로 이뤄진다. 주가 조작의 범행 도구로 이용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 전체(3400여개)를 열어 비슷한 수법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2개월 안에 작업을 끝내 주가 조작 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지난 10년치 주식 거래 데이터를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다. 1년 또는 2년 이상 장기적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들여다본다.

CFD 계좌를 열어 불법 사례가 없는지 조사하고, CFD 제도 개선에 활용하려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10년치 주식 거래를 뒤지는 게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이는 국민의힘과 금융위원회 협의에서 나온 사안이다.

일각에선 2600여개에 이르는 종목의 10년치 거래를 전수조사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거래소의 불공정거래 혐의 모니터링 대상이 단기간에 급등한 종목이었던 만큼 전수조사 타깃은 장기간 주가가 올랐던 종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 국내 주식시장에선 제약·바이오, 메타버스, 이차전지 등 특정 테마주에 자금이 몰려 장기간 거래량이 크게 늘어난 종목이 많다. 가깝게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대부분의 종목이 폭락 후 장기간 오름세를 이어갔다. 이런 이벤트까지 모두 고려해가며 주가가 조금씩 오른 종목을 골라내 불공정거래 여부를 확인하는 게 지금 최우선 순위를 두고 추진할 만한 일인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한 국회의원은 “CFD 사태 발생 이후 제도 개선의 중요성을 여러 번 피력했고, 지금 상황에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할 곳도 제도 개선 부분”이라며 “몇년치 데이터를 가져와 전수조사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수조사도 필요하지만 제도 개선과 신뢰 회복에 무게중심을 두는 게 옳다고 본다. 조사하려면 적지 않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교사의 자세도 좋지만, 지금은 다른 장외파생상품엔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 CFD 제도 개선안이 뭐가 있을지 머리를 맞대보는 게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이게 소 잃은 외양간을 더 튼튼하게 고치는 길 아닐까.

증권자본시장부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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