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K-우먼]'뇌졸중도 극복…남편이 남긴 회사 꿋꿋이 지켜'

현모양처 꿈이던 서임순 평산기공 대표
창업자인 남편 잃고 회사 대표직 맡아
볼트·너트 제조…HD현대인프라코어 등에 납품

어렸을 적 꿈은 현모양처였다. 사업가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서임순 평산기공 대표 이야기다. 그는 인천의 한 제조 업체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1976년에 평산기공을 설립해 지금의 HD현대인프라코어에 볼트와 너트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남기고 간 것"…가족처럼 곁을 지킨 직원들

평생 남편을 내조하며 살 줄 알았던 서 대표의 운명은 1998년에 바뀌었다. 암 선고를 받은 남편이 그해 12월 세상을 떠나면서 회사 대표직에 앉게 됐다. 그는 자사를 소개하면서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한 기업을 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남편이 남겨준 회사를 포기할 순 없었다. 가족처럼 곁을 지켜준 직원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IMF 시절에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직원 몇명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어요. 그런데 직원들이 '잔업수당 안 받고 일할게요'라고 자발적으로 말해준 덕분에 이탈자 없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는 산업 인프라 구축에 필수 요소인 볼트·너트 등 핵심 부품을 생산·가공해 HD현대인프라코어 등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이 길만 20년 넘게 달려오고 있다. 평산기공이 만드는 볼트와 너트 종류만 각각 1000가지가 넘는다. 다품종 소량 생산 공정이라 조금만 어긋나도 불량품이 발생하기 때문에 섬세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평산기공이 제작한 볼트와 너트는 굴삭기·지게차 등 산업용 차량에 들어가며 수출도 한다. 연매출 100억원대의 탄탄한 기업이다. 서 대표는 "품질 관리는 어느 기업보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불량률 제로와 납기 준수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품질에서 만큼은 "용납이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국산 제조 설비와 포스코 원자재를 사용하고 제품 품질 담당자를 따로 둘 정도로 철저하게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볼트 생산업체 (주)평산기공 서임순 대표가 인천 남동구 공장에서 생산 설비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그는 직원들을 가족처럼 여긴다. 사내 회의를 할 때도 "평산 가족 여러분"이라고 부른다. 기업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영 철학 덕분에 30년 넘게 이 회사에 다닌 직원들이 남아 있을 정도다. 일부 남자 직원들의 배우자까지 이곳에 취업해 일손을 돕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단 한명도 없다. 중소기업이지만 적절한 임금·복지 체계를 갖추고 있어 외려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힌다. 직원들에겐 자녀 학자금 지원은 물론 대학 진학을 원하는 직원의 학비까지 대주고 있다. 숭실대 벤처경영학과와 계약을 맺고 6명을 진학시켰다. 올 가을에 첫 졸업자가 나올 예정이다. 1년에 수천만원이 드는 일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서 대표는 "직원들과 수익을 나눠 갖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며 "조금이라도 아껴서 0.1%라도 직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고민한다"고 했다.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즐겁고, 저절로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회사 상황이 어려워질 때는 직원들에게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사가 상부상조해서 어려움을 극복한다. 그는 "우리 남편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서 대표는 기존 500평짜리 공장을 1000평으로 확장 이전했다. 이를 위해 100억원가량을 대출받았다. "열심히 일해서 갚아 나가야죠. 그렇지만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진 않을 겁니다. 매년 조금씩이라도 월급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겁니다."

혼수상태로 일주일…'오뚝이'처럼 일어서

평산기공 대표직에 오른 게 제2의 인생이었다면, 2009년은 제3의 인생이 찾아온 해다. 당시 서 대표는 더 나은 경영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수업을 듣고, 경제단체에서 강연이 열린다고 하면 만사 제치고 찾아갔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카네기 최고경영자 수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카네기 수업을 듣고 수강생들과 회식을 마친 어느 날이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집에 돌아와 거실 소파에 앉으려는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다. 옆에 있던 딸이 "엄마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고, 서 대표가 "힘이 없다"고 답한 게 마지막 기억이다. 택시를 타고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일주일을 누워있었다. 뇌졸중이었다. 의식이 돌아왔지만 몸의 절반은 움직이기 힘들었다. 말이 어눌해져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볼트 생산업체 (주)평산기공 서임순 대표가 인천 남동구 공장에서 생산된 굴삭기용 대형 볼트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꾸준히 재활치료를 하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하루에 공원을 다섯 바퀴씩 돌고, 신문을 크게 소리 내서 읽으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에 취미로 동양화를 그리기도 했다. 2시간 동안 몰입해서 손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집중력 회복에 도움이 되고 마음의 안정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오전 7시마다 불경을 들으며 40분 동안 공원을 산책한다. 이후 아침밥을 먹고 필라테스 수업을 받은 다음 출근하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 특히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아침 산책은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만의 건강관리 비법이다.

직원들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강소기업 목표

그는 자신을 '오뚝이'에 비유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포기를 모르기 때문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지만 회사를 지키고 성장시켜야 한다는 의지만큼은 남들 못지않다. 그의 소프트파워는 '배움'에서 나온다. 안전관리 책임자에게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기 위한 강의를 듣도록 했고, 서 대표 본인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한 교육을 수료했다. 직원들에겐 평소에 "뭐든 배워라, 배워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다"고 당부한다고 한다. 서 대표의 장녀는 직접 일을 배우며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평산기공의 100년을 바라보고 있다. 서 대표는 "매출액이 큰 기업이 되기보다는, 직원들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강소기업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임순 대표는....

서 대표는 남편이 1976년 설립한 평산기공을 이어받아 1999년 대표직에 올랐다.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변화를 겪은 서 대표는 한 기업을 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남편이 남겨놓고 간 회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위기 때마다 똘똘 뭉치는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여기까지 왔다. 직원 자녀를 위한 학자금을 지급하고, 장기 모범근로자에 대해 여행을 보내주고 있다. 한국산업단지 남동공단경영자협의회 부회장으로 입주기업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산단 구조 고도화를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인천지회 회장으로 취임해 지역 여성의 창업과 여성기업 경영활동, 판로 지원을 위한 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산업IT부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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