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금융과 복지를 헷갈리면 벌어지는 일

"제일 불쌍해서요." 지금은 금융감독원 국장이 된 사람이 예전에 미소금융재단 현장 점검을 나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그는 이 말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현장에 가보니 재단에서 빌려준 대출이 거의 상환이 안 되고 있었다. 어떻게 대출을 해줬길래 이 지경일까. 답답한 마음에 담당자에게 심사 기준을 물었다. "찾아온 사람 중에 제일 불쌍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줬습니다." 돌아온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경기도 극저신용대출이 왜 끝난 줄 아십니까?"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로부터 얼마 전 받은 질문이다. 1% 금리로 최대 300만원까지 빌려주는 상품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만든 제도다. 하지만 1% 이자조차 안 갚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고 한다. 이자가 너무 싸다 보니 '공짜'라는 인식이 들고 이런 분위기가 연체를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2년간 1000억원 가까이 나간 극저신용대출은 현재 셧다운됐다.

금융과 복지를 헷갈리면 벌어지는 일들이다. 국어사전은 금융을 '이자를 붙여 자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출자의 신용도를 평가해 적절한 이자를 매겨 융통하는 게 금융의 기본이다. 경제학자 차현진 박사의 '금융 오디세이'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자(interest)는 두 시점 간(inter)에 달라져 있는(est) 것을 말한다. 그 차이는 은행이 만드는 게 아니다. 자연, 즉 시간이 만든다. 1500년대 종교개혁자인 칼뱅이 대금업을 합법화한 이유다."

당시 칼뱅의 생각을 곱씹어 보면 복지와 금융은 더 명확하게 구분된다. "갚을 능력이 없는 불쌍한 자는 대가 없이 도와줘야 하지만(복지), 그게 불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이자를 내고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금융)."

서슬 퍼런 정치권의 호통에 겉으론 꼼짝 못하나 속으론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지점도 여기다. 은행을 보건복지부로 오해하고 서민금융이 복지정책인 줄 착각하는 정치인들. 이미 선을 넘었다. "은행은 공공재" 발언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간 것을 본 야당 대표는 '부당이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은행의 사회적 책임법을 발의했다.

국회에선 '은행이 예대금리차로 얻은 수익의 일정 부분을 서민금융진흥원 예산으로 쓰자'는 법 개정안도 나왔다. 금융위가 상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소액생계비대출 50만원에 월 6000원 이자를 매겼다고 '고리대금업자'라 욕하는 게 정치인들의 현실이다.

갚을 형편도 안되는 이들에게 금리를 낮춰주고 돈을 빌려준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복지 영역에서 흡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한정된 재원으로 마련한 서민금융이 '좀 덜 불쌍하다'는 이유로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겐 흘러가지 못한다.

서민금융은 정상적인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그룹과 복지 혜택을 받는 그룹, 그 사이에서 여기도 저기도 못 끼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아가 목숨을 건 총선이 1년 남은 시점. 앞으로 용산과 여의도에서 어떤 서민금융정책이 나올지 불 보듯 뻔해서 하는 말이다.

경제금융부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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