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은기자
“소나 말처럼 취급한다. 작업 중에 일을 중단하면 때린다. 부대 행진 중에 남보다 뒤처지면 때린다. 극소량의 식량을 받고 최대의 요구를 수행하며 구타당하는 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5년 7월 20일 작성된 ‘가시마 중국인 노무자 폭동상황의 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센다이 포로 수용소 소장 작성·미국 국립공문서관 소장)는 강제징용 노동자를 이렇게 서술한다.
동아시아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강제노동의 폭력성과 잔혹성은 많은 기록물이 증언한다. 조선인 강제노동에 모집된 사람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약 700만명이다. 이들은 탄광, 철도, 토목 현장으로 옮겨졌다. 상당수가 폭행과 고문, 사고사, 영양실조, 익사로 숨졌다.
강제징용은 역사적 실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최근 강제징용에서 강제성을 희석시키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내용의 역사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징용과 관련해선 자발적으로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라고 적었다. ‘조선인이 일본군 병사로서 징병됐다’는 문구는 ‘일본군에 병사로 참가하게 됐다’로 바뀌었다.
3·16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설정한 이 시점에 일본이 한 뼘의 진화도 없는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내놓은 것은 당혹스러울 정도다. 윤 대통령의 대승적 양보가 일본의 과거사 개악으로 돌아온 셈이다.
왜곡을 통한 ‘역사수정주의’는 상대주의가 아니다. 반(反)지성주의에 가깝다. 침략전쟁과 관련해 대안사실이 범람한다고 하더라도, 피해국이 공유하는 보편적 진실은 가려지지 않는다. 가해와 피해가 있는 역사 문제에 대해 국가는 ‘최소한의 공통된 인식’을 만들어 후세에 전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국제사회에 합일된 규범을 지키는 국가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 기반 위에 경제·안보 협력도 세워진다.
일본의 평론가 카또오 노리히로는 1998년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란 책에서 일본인의 무의식 구조를 ‘집단적 이중인격’에서 찾는다. 일본인은 패전 후 ‘자아를 부정했기 때문에 타자에 대한 애도도 하지 못한다’는 진단이다. 진실을 부정한다면 진정한 우호와 선린은 불가하다.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일본은 역사 왜곡을 멈추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