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장시간 노동이 생산성이 좋다'라는 생각은 그저 근거 없는 믿음(myth)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근로시간이 짧을수록 높은 단위 노동 생산성과 관련성이 높거든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20년 이상 세계 각국의 근로 환경에 대해 고민해온 '근로시간 전문가'인 존 메신저(Jon C. Messenger) 전 ILO 근로환경그룹 팀 리더는 지난 26일 아시아경제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초 연장근로 시간 산정 기준을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여유 있을 때 장기간 휴가를 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거센 반발이 일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며 일종의 상한을 제시했다. 포괄임금제 폐지 필요성까지 대두됐다. 고용노동부는 보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이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를 도입하려는 건 분명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특정 조건에서 주 중 최대 근로시간이 69시간까지 허용된다면 근로자의 건강과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겁니다."
메신저 전 리더는 한국에서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ILO에 낸 '전 세계의 근로시간과 워라밸'이라는 보고서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성 확대가 근로자의 워라밸을 향상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린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위기의 경험을 토대로 근로시간 길이와 근로시간의 구조를 면밀히 살핀다면 사업 성과와 워라밸 모두 증진하는 '윈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메신저 전 리더는 인터뷰 중 "한국은 최근 수십년간 근로시간 단축에 상당한 진전을 보여왔다"면서 "이러한 맥락에서 유연한 근로시간 방식을 도입하려는 건 분명 합리적(reasonable)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1월 낸 보고서에서 한국의 근로시간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이 산업화하던 시기에 평균 연간 근로시간이 극단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1990년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주 40시간제(연장근로 제외) 도입 이후 더 큰 폭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별도 꼭지로 한국의 '주 52시간 도입'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메신저 전 리더는 "(한국의) 유연한 근로시간 도입이 주 평균 근로시간을 40시간 아래로 낮춰주는 등 근로시간 추가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메신저 전 리더는 한국 정부의 개편안 내용 중 주중 최대 근로시간 69시간이 현실에서 구현될 경우 근로자의 건강이나 워라밸을 해치고 생산성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근로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제시한 세 가지 규칙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 부여 또는 1주 64시간 상한 준수 ▲4주 평균 64시간 이내 근로 준수 ▲관리 단위에 비례해 연장근로 총량 감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놓은 반응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주 50시간 이상 일하면 근로자의 건강(산업안전보건·OSH), 워라밸, 생산성에 부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실증적인 증거가 상당히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장근로 총량 제한에 따라 주 평균 48.5~52시간 근무하는 것을 두고 "주중 근로시간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만약 실제 주중 평균을 (계획한 대로) 유지한다면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주중 최대 근로시간이 64시간, 심지어 특정 조건에서 69시간까지 허용돼 실제로 주중 근로시간이 그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very high level)'까지 간다면 OSH와 워라밸,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부 발표 이후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장 문제가 된 건 '공짜 야근' 문제다. 메신저 전 리더에게 정부가 이를 없애려고 한다고 하자 "무급 과로를 없애겠다는 목적이 있다면 노동 관련 조사를 한층 강화해 과로와 관련한 규제를 강도 높게 시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유급휴가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기업들이 사업장을 닫아야하는 국가 공휴일을 지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메신저 전 리더는 근로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려면 "본인이 근무 일정을 짜는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어느 정도 짜인 틀 속에서 근무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을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근무제처럼 근로자들이 근로시간에 대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 환경에 대한 연구만 30년 이상 해 온 메신저 전 리더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원격근무(telework) 트렌드에 대해서도 연구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11월 그는 ILO의 연구 시리즈 중 하나로 '21세기의 원격근무'라는 책을 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직후인 2020년 3월에는 전 세계 직장인들이 갑작스럽게 사무실이 아닌 집에 갇히자 ILO가 준비한 '효과적인 재택근무를 위한 팁' 영상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팬데믹 기간 중 진행된 원격근무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실행됐지만, 원격근무가 최소한 사무실 근무만큼 생산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면서 "내 ILO 연구 결과를 포함해 많은 연구에서 최적의 근무 방식은 근무 시간을 일부는 원격으로, 또 일부는 사무실에서 보내는 '부분 원격근무(partial telework)'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는 팬데믹 이후 요즘 말로 '하이브리드 근무(hybrid work)'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메신저 전 리더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대부분 가장 좋은 접근법이고 원격근무가 가능한 산업군과 직업에서 분명한 접근이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하이브리드 근무는 폭넓고 각양각색의 모델이 가능해 선택 가능한 하이브리드 근무 모델을 신중히 분석해보고 어떠한 것이 우리 조직에 잘 맞는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직원들과 밀접하게 협의할 것을 강하게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사무실에서 대면할 수 없는 직원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메신저 전 리더는 가장 효과적으로 개인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결과에 따른 관리(Management by Results)'를 제시했다. 그는 관리자와 직원이 모두 일반적인 생산성 측정 메커니즘에 동의해 직원들이 상황에 기반해 업무 체계를 구성할 수 있도록 유연성과 자율성을 제공하고 관리자는 계속해서 진행 과정을 확인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메신저 전 리더는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노동부에서 일한 뒤 2000년부터 지난 1월까지 ILO에서 수석 연구책임자, 근로환경 그룹(Working Condition Group) 팀 리더로 활동했다. 그는 2019년 ILO의 '균형 잡힌 근로시간 마련을 위한 가이드' 작성을 주도했고, 지난 1월에는 '전 세계의 근로시간과 일과 생활의 균형'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발표 직후 퇴직한 그는 현재 ILO 본사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를 떠나 고향인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경제의 취재 요청을 받고 "개인의 의견일 뿐 ILO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