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염불회 발상지' 고성 건봉사지 사적 지정

석가모니 진신사리 봉안한 중심 도량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 복원 사업 중

신라시대에 건립됐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 옛터만 남은 강원 고성 건봉사(乾鳳寺) 절터가 국가지정문화재로 관리된다. 문화재청은 '고성 건봉사지(乾鳳寺址)'를 사적으로 지정한다고 28일 전했다. 고고학적 발굴성과와 사역 전체에 분포한 석조 유물 등의 역사·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990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아홉 차례 발굴조사와 두 차례 학술발표회를 통해 고려 후기 건물지까지 확인했다"며 "예불 공간과 승방이 균일하게 구성된 다원식(多院式) 구조가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 자리한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520)에 승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학계는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의 발상지이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중심 도량(道場)으로 기능했으리라 본다. 만일염불회는 1만일(약 27년)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우며 기도한 법회다. 살아서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한다.

조선 세조 대에는 왕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우거나 육성한 불교 사찰을 뜻하는 원당(願堂) 역할을 했다. 사적 지정 여부를 검토한 문화재위원들은 보고서에 "세조가 1465년 건봉사에 행차해 닷새 동안 머물렀는데, 이때 자신의 원당으로 정하고 어실각(御室閣)을 짓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건봉사'로 이름이 바뀐 건 절의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돌이 있어서다.

건봉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惟政·1544∼1610)이 승병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1605년에는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부처님의 치아와 사리 등을 되찾아 와 이곳에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봉사는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됐다. 전쟁 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들어가 출입도 통제됐다. 제한이 완화된 1989년에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사찰 복원 사업이 한창이다.

문화스포츠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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