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기자
엘 알(El Al) 화물 수송기가 11층 아파트와 충돌해 주민 39명과 승무원 4명이 사망했다. 10개월 후, 심리학자들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유도 질문을 던졌더니 65%가 존재하지도 않는 사고 당시 영상을 본 것처럼 사고 당시 장면을 설명했다. 기억의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런 사례를 통해 기억의 소멸·정신없음·막힘·오귀인·피암시성·편향·지속성 오류를 분석한다. 기억은 왜 불완전하며, 그 기억으로 인해 우리는 어떻게 곤경에 처하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1990년대 초, 미국 캔자스주립대학의 심리학자 찰스 톰프슨(Charles Thompson)과 그의 동료들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억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대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매일 그날 일어난 특별한 사건을 일기에 기록했다. 이들의 망각은 빠르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인 사건에 대한 망각 곡선은 다른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관찰한 망각 곡선과 대체로 비슷했다. 톰프슨이 연구한 대학생들은 특별한 사건을 기록하고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경험 중에는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일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은 적었으며, 일상적인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이외에도 추수감사절 만찬처럼 많은 사람이 큰 의미를 부여하는 연례 행사와 관련된 연구 결과도 있었는데,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중요한 사건도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을 특징 짓는 소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제1장 기억은 소멸된다」 중에서
우리는 이 현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발견을 통해 가장 기이한 오귀인인 ‘프레골리 증후군(Fregoli Syndrome)’을 밝혀낼 수 있었다. 1927년,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쿠르봉(P. Courbon)과 파일(G. Fail)은 자신을 ‘적들의 희생자’라고 믿는 한 환자를 묘사했다. 이 환자는 프랑스 여배우 2명이 자신을 괴롭히려 한다고 믿었다. 두 의사는 다른 사람들을 흉내내서 당시 파리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레오폴도 프레골리(Leopoldo Fregoli)의 이름을 본떠 이 증상에 이름을 붙였다. 프레골리 증후군은 낯선 사람 안에 친구나 친척, 유명인사가 깃들어 있다고 강하게 믿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의 사진작가와 같은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낯선 사람들에게서 친숙한 느낌을 받지만, 프레골리 증후군 환자들은 특정한 오기억으로 고통을 받는다. 프레골리 증후군은 보통 정신과 환자에게서 발견되지만, 최근 신경학자들과 신경심리학자들은 정신과적 병력이 없는 사람에게서도 뇌 손상 이후에 나타났다는 사례를 보고했다. ---「제4장 기억은 오귀인을 일으킨다」 중에서
고정관념 편향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흑인 범죄자의 이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는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미국의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 마자린 바나지(Mahzarin Banaji)와 그의 동료들은 대학생들에게 남성의 이름 몇 개를 보여주면서, 그중 몇몇 이름이 최근 미디어에 나온 범죄자들의 이름이기 때문에 익숙할 것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실제로 범죄자의 이름은 하나도 없었지만, 대학생들은 전형적인 백인 이름(애덤 매카시Adam McCarthy, 프랭크 스미스Frank Smith)보다 전형적인 흑인 이름(타이론 워싱턴Tyrone Washington, 다넬 존스Darnell Jones)을 범죄자로 2배 가깝게 더 많이 지목했다. 이 편향은 “인종주의자들은 백인의 이름들보다 흑인의 이름들을 더 많이 지목합니다. 그러니 판단을 내릴 때 이름의 인종을 고려하지 마세요”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에도 나타났다. ---「제6장 기억은 편향된다」 중에서
도둑맞은 뇌 | 대니얼 샥터 지음 | 홍보람 옮김 | 인물과사상사 | 444쪽 | 2만3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