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사라진 생명보험…작년 해지환급금 38兆 '역대급'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한달새 10兆 이탈
보험 투자상품 가치 잃었다?…새 먹거리 절실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지난해 생명보험 해약금이 38조원을 넘어섰다. 보험이 투자자산으로서의 매력을 잃고 사상 최대 규모의 '해약 러시'에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고금리 시대에 은행 예·적금이나 주식 등 다른 투자자산으로 눈을 돌린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평가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출생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흐름 속에서 생명보험사들의 새 먹거리 발굴이 보다 절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22년 1~11월까지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해지환급금은 38조5299억원(일반 계정 기준)으로 집계됐다. 이미 2021년 전체 해지환급금 규모(26조448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2000년 관련통계 집계 이후 최대 규모다. 2017년 말 22조1086억원 대비 약 5년 만에 1.7배 넘게 불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서 11월 한 달 사이에만 약 9조원 가까이 금액이 빠져나갔다. 역대급 규모의 '보험 해약 러시'가 벌어진 셈이다.

이렇게 가입자들이 급격히 이탈한 배경은 무엇일까. 일각에선 '급전'이 필요한 경우가 늘었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 분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보험의 효력이 상실되면서 발생한 환급금 규모는 2020년 2조8223억원(일반 계정 기준)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2021년 1조2349억원, 2022년 1조1797억원(1~11월 기준) 등 오히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 어쩔 수 없이 해지한 이들은 큰 변화가 없는 셈이다.

결국 보험이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시장금리 상승 시에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높은 예금, 적금 등 다른 업권의 금융상품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보험해약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장 많은 자금이 빠져나간 지난해 10~11월에는 은행권의 수신금리 경쟁으로 5%대 정기예금 상품이 줄줄이 등장했다. 금융당국이 지나친 금리 경쟁 자제를 요청할 정도였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생명보험 해약금 증가세가 특히 지난해 말에 집중된 것은 금리 급등에 따른 저축성 보험 갈아타기 영향으로 보고 있다"라며 "생계형 해지, 금리와 물가 급상승에 따른 우려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반영됐겠지만 기본적으로 이자율 갈아타기가 가장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생계형 보험해약을 줄이기 위해 보험료납입 일시중지 제도나 보험계약대출 등을 내걸 수 있지만 이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저축성보험의 금리를 무작정 높이기에는 역마진 문제가 불거지면서 보험사 건전성이 떨어질 수 있다.

결국 생보사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절실히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인 가구가 늘고 전체 인구가 줄며 생명보험 주 고객층 자체가 줄고 있는 만큼 근본적으로 보험상품의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험사 스스로 각종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 상품 경쟁력을 갖춰나갈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의 정책 역시 일시적인 지원 방안이 아니라 각종 규제를 개선하면서 보험사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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