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나영기자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팬데믹을 겪는 동안 자영업자는 '빚'의 대명사가 됐다.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도 모자라 빚을 탕감해주는 새출발기금 정책까지 나온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자영업자는 563만2000명, 전체 취업자의 20.1%에 달한다. 오늘도 골목마다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자영업자들은 얼마나 많은 빚을 짊어지고 있는 걸까. 그 빚은 왜 지게 된 걸까. 언젠가 빚을 갚을 수는 있을까.
프랜차이즈 돼지 곱창집을 운영하는 강대선씨(49)는 "1월 매출이 2300만원인데 너무 처참하다"고 했다. 이달 지출은 재료비 960만원, 월세 220만원, 인건비 410만원, 주류와 배달비 300만원, 깃발 광고비 130만원, 공과금 100만원, 세금 120만원. 카드 수수료와 배달앱 수수료는 포함도 안했는데 계산기에 벌써 2240만원이 찍혔다. 강씨는 "이번 달 수익은 0원"이라며 "대출도 1억원이나 있는데 미치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 바닥에서 피자는 무료배달이 진리에요. 리뷰 이벤트 '1+1' 걸고, 쿠폰 3장은 줘야 주문이 들어와요." 서울 중랑구에서 피자집을 하는 차근성씨(45)가 10년 동안 1인 사장을 하며 내린 결론이다. "배민원(배달의 민족 한집 배달) 배달비 1000원 올리고, 요기요 할인 좀 뺐더니 지난달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며 "배민 깃발(근거리 점포 위치 설정 광고, 깃발 1개당 8만8000원)은 6개나 꽂았는데 배달료는 안 받으니 수익이 바닥"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3일 신용보증재단중앙회가 발표한 '2022 보증 이용 소상공인 금융실태 보고서'(소상공인 사업체 3101개 설문조사)를 보면 사업체 1개당 평균 부채 금액은 1억4407만원으로 집계됐다. '5000만~1억원'(32.3%)이 가장 높았고, '2000만~5000만원'(23.8%)이 뒤를 이었다. '1억~2억원'(18.2%), '2억~4억원'(10.3%)씩 억대 빚을 진 이들도 상당수였다.
소상공인 10명 중 4명은 시간이 갈수록 빚이 늘어난다고 했다. 1년 전 대비 부채가 증가한 사업장이 41.0%에 달했다. 1년 전과 동일하다는 33.4%였고, 감소했다(2.56%)는 제일 적었다.
대출이 불어난 이유는 무엇보다 매출 부진(59.7%)에 있었다. 도소매업, 서비스업, 제조업 가리지 않고 실적이 줄면서 빚을 더 냈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모자 도매상을 하는 상인은 "이번 겨울엔 은행 대출 받아 월세만 내면서 버텨보자는 심정"이라며 "날이 풀리면 외출도 늘고 모자도 지금보다 더 팔리지 않겠나"라고 했다. '각종 비용 상승'도 부채 증가 원인으로 36.7%가 꼽았다. 주로 음식·숙박업 종사자들이 여기에 답했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고공 행진하며 식료품 가격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매출은 줄고, 빚은 늘고, 이자까지 오르다 보니 자금 사정은 더 악화됐다. 지난해 대부분의 소상공인은 자금 사정이 '감소'(67.2%)했다. '동일'(19.5%)하거나 '증가'(13.4%) 했다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었다. 보고서는 "올해도 (작년 대비) 자금 사정이 '감소'할 것이란 대답이 52.4%였다"며 "해가 갈수록 소상공인들의 주머니 형편이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희망은 안 보이지만 가게 문을 닫겠다는 생각은 없다. 자영업자 대부분이 '향후 현 사업체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83.2%)이라고 밝혔다. '창업비용이 아까워서' '폐업할 돈도 없어서' 등이 이유다. 2년 전 인천에서 분식집을 연 김경진씨(51)는 월세 3개월 치를 못내 집주인과 재계약을 못할 형편에 처했다. 김씨는 "처음에 인테리어와 보증금을 포함해 총 1억8000만원 정도 들어가서 가게를 포기할 수 없다"며 "정부 보증 대출과 저축은행을 알아보는 중인데 밀린 월세에 이자라도 붙여주고 사정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사업체당 평균 창업자금은 1억2154만원으로 집계됐다.
장사를 접겠다고 마음먹어도 평당 수십만원인 철거 비용과 기존 대출 상환, 세금까지 들어가 부담이 커서 실행에 못 옮기는 경우도 있다. 신용보증재단중앙회 측은 "자영업자들의 폐업 비용만 평균 1989만원(작년 상반기 기준)이라 폐업 과정에서 원상복구 비용을 포함한 폐업 비용 지원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