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대신 이걸 먹는다'…같은 듯 다른 북녘 설 풍경

새해·설 인사 "복 많이" 대신 "축하합니다"
떡국 대신 만둣국…"만두소에 당면 안 넣어"
세뱃돈 男 독차지…김일성 父子 동상 헌화

[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우리나라와 같은 뿌리를 가진 북한도 '설 명절'이 있다. 남한에선 떡국을 먹으면서 '한 그릇에 한 살씩 먹는다'는 익살스러운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시끌벅적 윷놀이판도 벌인다. 집안 어른들께 절을 올리고 두둑하게 챙기는 세뱃돈 역시 설날의 훈훈한 풍경이다. 북녘의 설 풍경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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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축하합니다!"

22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과거 양력설(1월1일·우리의 신정) 하나만 명절로 인정했다. 김일성 주석이 민속명절을 '낡은' 봉건 잔재로 규정하고 풍습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1972년 추석부터 성묘가 허용됐고, 1988년 들어서는 추석이 명절로 인정됐다.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1989년부터 음력설(구정)이 다시 살아났고, 2003년부터 양력설 대신 음력설을 쉬도록 했다. 음력설이 공식적으로 '설 명절'이 된 건 2006년이다.

우리나라는 새해와 설 연휴를 전후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북한에선 "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최근에는 남한 영화와 드라마가 주민들 사이에 많이 유통되다 보니 이따금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

남한은 설 전날부터 사흘간 연휴를 보내지만, 북한에선 '명절=휴일'이라는 개념이 제도화가 안됐다. 북한 내각에서 해마다 따로 민속 명절을 휴무일로 지정하는 공식 발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설처럼 '빨간날'과 연휴가 겹칠 경우 대체휴일이 생기는 것도 북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떡국 대신 만둣국…"어른 주먹보다 큼지막하게"

북한 식당, 새해맞이 떡국 준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명절 음식은 어떨까. 설날 하면 떡국부터 떠올리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선 만둣국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떡국이나 떡만둣국도 먹지만, 북쪽 지역으로 갈수록 만둣국이 일반적이다. 곡창지대가 많은 남한과 달리 쌀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 주로 산악지대에서 조, 수수, 감자 등을 재배해온 역사가 반영된 문화로 보인다.

물자가 풍족한 평양에선 고기를 넣어 육수를 낸 떡만둣국을 먹기도 하고, 개성 지역에선 조랭이떡을 넣은 떡국을 즐긴다. 꿩고기로 육수를 만들지만, 꿩고기를 구하지 못하면 닭이나 양파로 육수를 낸다. 사시사철 떡국을 먹을 수 있는 우리와 달리 북한에선 '떡국은 겨울에 먹는 음식'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 김모씨(38)는 "명절이 되면 어머니를 곁에 둘러앉아 만두를 빚곤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남한에선 만두를 한입 크기 정도로 빚지만, 북에 있을 때는 어른 주먹보다 크게 빚었다"며 "만두소엔 역시 돼지고기가 들어가고 시래기나 두부 등을 넣었다. 남한처럼 당면을 넣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북한의 대표적인 설음식으로 찰떡, 백설기, 절편 등을 비롯한 떡과 지짐이, 고기구이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약과나 강정, 수정과, 식혜처럼 우리와 비슷한 다과류도 명절 음식으로 꼽힌다. 다만 식량난을 겪는 서민들은 특별한 음식을 차리기보다는 형편에 맞게 음식을 장만하고 가족들과 나눠 먹는다고 한다.

명절엔 역시 윷놀이…당국 차원의 '설맞이 공연'도

북한, 설 맞아 다채로운 공연 진행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속놀이는 우리와 비슷하다. 역시 가장 대중적으로 즐기는 건 윷놀이다. 탈북민 신모씨(49·여)는 "친척들까지 모이는 날엔 보통 가족끼리 편을 나눠 윷놀이 판을 벌이곤 했다"며 "설날 윷놀이로 그 해의 운수가 판가름 난다는 말도 있어서 승부욕이 상당했다"고 회상했다.

북한 당국은 전통 민속놀이를 기반으로 한 '민족체육'을 권장한다. 씨름과 그네 타기, 널뛰기, 태권도, 밧줄 당기기 등이 있다. 전국 민족체육 경기대회를 열어 종목별로 개인전과 단체전, 도별 대항전 등이 이뤄지기도 한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뒤 이 같은 '체육의 생활화'가 주요 여가활동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여가 생활은 영화 감상이나 공연 감상, TV 시청이다. 전기 사정이 열악하지만, 설날 만큼은 당국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축전지 등을 활용해 TV를 보거나, 시장을 통해 유입된 외부 영화, 드라마 등을 휴대용 매체로 보는 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 차원에서 주민들을 대거 참석시키는 '설맞이 공연'도 연다. 지난해 2월 설날에는 평양국립연극극장, 평양교예극장 등에서 경축 공연이 열린 바 있다. 당정 간부들의 참석 아래 '설명절 승마경기'도 진행됐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로는 대규모 불꽃놀이나 드론쇼를 여는 등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볼거리도 마련하고 있다.

지역 왕래 어려운 北, '민족 대이동' 대신 식당으로

북한 설날 승마 경기장 노점 앞의 주민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명절 연휴에 가장 익숙한 풍경은 '꽉 막힌' 도로다. 귀향길에 오르거나 여행을 떠나는 차량들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처럼 들어차는 모습이 떠오른다. 반면, 북한에선 지역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 여행은 상상조차 어렵다. 당국으로부터 '통행증'을 받아야 하는 데다 교통 사정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동을 허가하는 증명서로는 출장증명서와 여행증명서가 있는데, 각각 공적·사적 사유에 해당한다. 경제난 이후로는 한 때 장사를 목적으로 뇌물을 주고 여행증명서를 발급받는 현상이 늘었다고 한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이동 통제 수위가 높아져 가까운 지역 간에도 왕래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설날 북한에선 식당이 북적인다. 남한은 연휴가 되면 식당들도 문을 닫고 장사를 쉬어 가지만, 이곳저곳으로 떠날 수 없는 북한에선 명절마다 설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로 식당들이 분주해진다고 한다. 가정에서 챙겨먹는 명절 음식이 북한에선 식당에 가서 먹는 '특식'인 셈이다.

또 식당까지 가서 설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주민들 사이에서 생활 수준과 재력을 과시하는 자랑거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명절마다 북한 매체들이 으레 옥류관과 청류관, 신흥관 등 평양을 비롯한 지역별 대표 식당에서 여러 음식을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을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세배…달력은 '있는 집'만

설 맞아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하는 북한 주민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탈북민 정모씨(52·여)는 "북에 있을 때 구정을 쇠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신정 때 이웃집을 찾아다니면서 세뱃돈을 받는 문화가 있긴 했다"며 "하지만 여자 아이들은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수 없어 남자 아이들만 세뱃돈을 한껏 챙겼다. 어릴 땐 그게 참 이해도 안 되고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북한에도 '세배'가 있다. 다만 설날 즈음에 조상들의 묘를 찾는 우리와 달리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이나 북한 각지에 세워진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아 헌화하는 게 관례로 자리잡았다. 노동신문은 이런 풍습을 "당의 현명한 영도와 주체성, 민족성을 고수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설 풍경 가운데 또 하나의 차이점은 달력이다. 새해가 되면 각 기관이나 회사에서 달력을 나눠주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 달력은 뷰유층이 소유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해진 남한에선 달력이 필요없는 물건으로 취급받지만, 북한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인 것이다.

부유층이 집안에 명화를 걸어두는 것처럼 화려한 달력으로 부를 과시하고, 보통의 서민들은 한 장에 열 두 달이 모두 그려진 달력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년간은 방역 통제에 따른 국경 봉쇄로 종이나 잉크 등 재료들이 품귀 현상을 빚어 달력의 값이 더 뛰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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