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준형기자
[아시아경제 세종=이준형 기자] 정부가 전국 원자력발전의 방사성폐기물 포화 시점을 1년 이상 앞당긴다.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을 백지화하고 원전 이용률을 끌어올리면 방폐물 발생량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고준위 방폐물처리장 확보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할 건식저장시설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르면 다음달 초 재산정된 국내 원전 본부별 방폐물 포화 시점을 발표할 계획이다. 포화 시점은 기존 전망치를 1~2년 앞당기는 방안이 유력하다. 앞서 산업부는 2021년 원전 본부별 방폐물 포화 시점을 산정하며 2031년부터 고리·한빛 원전을 기점으로 국내 원전이 순차적으로 가득 찰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원전 계속운전 등을 고려하면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은 기존에 예상했던 수준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포화 시점은) 최소 1년 이상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가 포화 시점을 앞당기는 건 윤석열 정부의 ‘원전 드라이브’ 정책을 반영한 결과다. 원전 이용률을 높이면 원전 가동시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원전 이용률만 해도 81.6%로 2021년(74.5%) 대비 7.1%포인트 증가했다. 정부는 안전을 전제로 원전 이용률을 80%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또 산업부는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기존 20%대에서 2030년 32.4%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못 박았다. 전날(12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을 확정하면서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통해 제시한 2030년 원전 발전 비중 목표치(23.9%)보다 8.5%포인트 높다. 그만큼 사용후핵연료 발생량도 증가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원전에 가득 찬 방폐물을 옮길 저장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원전은 발전소 내부 수조 형태의 습식저장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한다. 만약 습식저장시설이 포화하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국내 원전 중 가장 먼저 습식저장시설이 가득 찬 월성 원전이 1991년부터 건식저장시설을 꾸준히 증설해온 이유다. 다만 국내 원전 중 건식저장시설을 갖춘 곳은 월성 원전밖에 없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원전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고리 원전의 방폐물 포화율은 85.9%다. 건식저장시설이 있는 월성 원전을 제외하면 국내 원전 중 포화율이 가장 높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하반기 고리 원전에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짓기 위한 방안을 이사회에 부의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당시 지역사회는 물론 이사회 내부에서도 반대 기류가 있었던 영향이다.
올해도 건식저장시설 구축 작업의 첫발을 떼지 못하면 ‘방폐물 대란’이 올 수도 있다. 통상 건식저장시설 구축에는 7년이 걸린다. 고리 원전 방폐물 포화 시점이 기존 2031년에서 최소 2030년으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가 건식저장시설을 착공해야 하는 ‘마지노선’인 셈이다.
산업부는 한수원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건식저장시설 구축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해 말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고리 원전 건식저장시설 관련 설계를 발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설계 발주는 (한수원) 이사회 통과가 전제조건”이라며 “(한수원) 이사회 의결 시 바로 발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가 영구처분시설인 고준위 방폐장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습식저장시설은 물론 건식저장시설도 ‘임시’ 시설에 불과한 만큼 방폐물을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부는 방폐장 부지 선정부터 완공까지 37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부지 선정 작업에 돌입해도 2060년에나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