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기자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서울에는 멋진 스카이라인과 랜드마크가 될 건물보다 주변과 소통할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하다."
청와대, 국회의사당, 서울시청, 용산구청,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은 아주 빼어난 건축물들이다. 그러나 이들 건축물은 뻔뻔하고 오만한 건축물이라는 것이 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의 평가다.
그는 "건물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길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다른데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용산구청 등은 배를 쑥 내밀고 있는 듯한 아주 권위적인 건물"이라면서 "건물이 자신의 외모를 뻐기면서 다른 건물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 길과 건물의 입구에 높이차가 있다. 1층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지만, 차들은 진입로를 이용해 출입구 앞에 바로 정차한다. 사람보다 차를 더 배려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계단을 만들지 않고 1층과 길의 높이가 같으면 휠체어나 유모차용 경사로를 별도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굳이 길과 1층의 단차를 두는 것은 왜일까.
"비가 오면 침수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너희들은 나보다 낮다'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서 "보도의 높이와 건물 1층의 높이가 같다면 이것이 바로 건물이 고객들을 맞이하는 태도"라는 것이 정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서울시청과 용산구청, 경기도의 성남시청 등 대부분의 공공청사가 다 이렇게 지어졌다"면서 "공공청사라면 겸손하게 시민들을 받들어야 하는데 공공청사일수록 권위적인 모습을 선호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교수는 서울 시내 건물 중에서 그나마 규모가 크면서도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다소곳한 면모를 보여주는 건물로 을지로에 있는 중소기업은행 본점 건물을 꼽았다. 그리고, 소통하지 않으려는 불통의 건물로 DDP를 지적했다.
"DDP는 주변의 건물들이나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멋진 조형물로만 존재하겠다는 대단히 오만한 건물"이라고 했다. DDP의 가장 큰 특징이 창이 없는 것인데, 동대문이라는 위치에 자리 잡았으면서도 다른 건물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길과 도시와도 소통하지 않겠다는 태도라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이다.
정 교수는 "서울은 지금 그들만의 성채인 아파트단지들로 닫힌 도시가 돼 가고 있다"면서 "멋진 스카이라인을 위한 고층 건물과 랜드마크용 건물보다 소통할 수 있는 건물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보전, 암사동 서원마을 등 서울 곳곳에서 30여년간 굵직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도시설계 전문가다.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3년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15년간 대학에서 학자로 "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인가", "도시는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에 매달리고 있다. 저서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도시의 발견:행복한 삶을 위한 도시 인문학>, <천천히 재생> 등과 연구 저서 <서울시 보행환경 기본계획>, <북촌 가꾸기 기본계획> 등이 있다.</i>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