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남성만 야간 숙직 근무를 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시대에 맞춰 숙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숙직 제도를 개선하려면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경기도의 한 농협IT센터에 근무하는 직원 A씨는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에 남직원만 야간 당직 근무를 하는 규정이 성 차별이라며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 진정을 기각했다. 야간 숙직이 한 차례 순찰을 제외하면 대부분 내근 업무를 하기 때문에 일직과 비교해 업무 강도에 차이가 없으며, 야간 근무 종료 후에는 4시간의 보상 휴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남성 근로자에게만 불리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여성 근로자의 경우 폭력 등 위험 상황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기각 근거로 들었다.
이 결정을 두고 일부 남성들 사이에선 논란이 일었다. 남성 근로자에게만 야간 숙직 근무가 강요되는 것은 성차별이며,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 동일하게 야간 숙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야간 숙직 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까.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 근로자와 18세 미만의 경우 야간 근로가 제한된다. 당사자가 요구하거나 명시적으로 청구하는 경우에도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임신 중이 아닌 18세 이상의 여성에게도 야간근로(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를 시키려면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근무시간을 초과한 시간 외 근로의 경우에도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적용하려면 단서가 붙는다.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에게는 시간외근로를 시켜서는 안 되며, 당사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도 쉬운 종류의 근로로 전환해야 한다.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에게는 단체협약이 있는 경우라도 1일에 2시간, 1주에 6시간, 1년에 15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 외 근로를 시켜선 안 된다.
따라서 당직 제도를 수정하기 위해선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2018년 남녀 통합 당직 제도를 도입한 서울시는 제도 시행에 앞서 설문조사를 통해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임산부뿐 아니라 만 5세 이하 양육자, 미성년 자녀를 둔 한부모 가정 등은 남녀 불문 당직 근무에서 빠질 수 있게 돼 모성뿐 아니라 부성까지 보호할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현재 경기 파주시와 경남 김해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기준을 만들어 남녀 통합 숙직제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몇 가지 과제는 남는다. 성별의 구분 없이 야간 숙직 업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내 보안을 강화하는 등 여성 근로자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정 내에서 비교적 돌봄 노동의 부담이 큰 기혼여성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의 진정을 기각했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있는 인권위 역시 여성 근로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당직 방식을 개선하라고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여성 직원 수가 증가하고 보안 시설이 발전하는 등 여성들이 숙직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면 성별의 구분 없이 당직근무를 편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