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우리나라도 각종 마약이 생활 주변에 파고들면서 더 이상 '청정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정부 당국은 하수도를 검사해 마약 복용 실태를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등 정확한 실태 파악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상대로 한 조기 예방 교육과 건강 검진하듯 직장에서 정기적으로 마약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예전처럼 사법 당국의 단속 위주로 주먹구구식 대응보다는 과학기술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에서는 이같은 정부 당국과 과학자들의 정책 및 연구개발 내용들이 소개됐다.
우선 김일수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정책과장이 나서 2020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하수역학 기반 마약류 사용량 모니터링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하수처리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전문장비로 잔류 마약류의 종류와 양을 분석해 인구 대비 마약류 사용량을 추정하는 과학적 기법이다. 김 과장은 "과연 실효성을 있을까 의심했는데, 2018년쯤 발생한 버닝썬 사건이 예산을 따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면서 "일부 대학에서도 하수도 검출 성공한 후 제안해 와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불법 마약류 복용은 숨어서 몰래 하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사용되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은 소변 등을 통해 배출되기 때문에 하수도에서는 검출될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이같은 하수도 마약류 모니터링 결과는 어땠을까? 2020년의 경우 불법 마약류ㆍ의료용 마약류 등 16개 종 모니터링을 전국 52개소에서 검사한 결과 필로폰이 모든 지역에서 다 검출됐다. 의료용 마약류도 5종이 검출됐다. 지역 별로는 인천ㆍ부산 등 항만 지역에서 상당히 검출량이 많았고, 유흥시설 밀집 지역도 높았다. 계절 별로는 봄ㆍ여름에 비해 가을에 많이 검출됐다. 김 과장은 "우리나라에서도 불법 마약류가 전국에서 사용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내년부터는 지역별 현황 등 구체적인 데이터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화경 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위원은 마약 중독의 원인과 영향, 대책을 설명했다. 최 전문위원에 따르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자기는 중독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마약류를 접했다가 중독자의 길에 빠져든다. 마약류 경험자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무려 49.4%가 '호기심'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약류는 복용 후 기분, 사고와 판단, 감각적 지각을 왜곡하고 나중엔 행동도 변화시킨다.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은 두 번 다시 안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야말로 '천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복용자는 결국 중독되고 만다. 우선 '소확행'을 잃게 된다. 즉 삶의 다양한 레파토리를 즐기면서 분비되는 도파민으로 기쁘고 행복한 일상을 잔잔한 자연 보상으로 느끼게 되는 게 불가능해진다. 이보다 2~100배에 달하는 강력한 인위적 보상인 마약류만이 삶의 기쁨ㆍ동기ㆍ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창의력, 판단력, 의사 결정, 학습ㆍ기억력 등 행동을 결정하는 뇌의 기능이 망가진다. 최 전문위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뇌의 기능이 망가진다는 것"이라며 한 사례를 소개했다. 2020년 9월 해운대에서 동행으로부터 마약을 받아 복용한 포르쉐 운전자가 도로를 질주하다 7중 추돌 사고를 일으킨 것이 대표적인 뇌 기능 저해 사례라는 것. 또 약물복용조절장애, 기억력 문제(치매), 자기 조절의 어려움(충동성, 분노관리), 대인관계 대처 능력 등을 겪게 된다.
과거엔 이같은 마약 중독을 개인의 도덕적 결함과 의지력 부족 때문으로 보고 처벌 위주의 대책이 마련됐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마약 중독도 뇌 구조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질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약 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도 다양하다. 유전적 요인의 경우 가족력이 있고, 주의ㆍ집중력이 약하거나 급하고 충동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취약하다. 보상 회로에서의 만족하는 능력, 전두엽 기능 등도 영향을 미친다. 환경적 요인은 어린 시절 부모의 약물ㆍ알코올 오남용 등 가정환경, 10대 때 사귄 친구 등의 영향도 크다.
최 전문위원은 "마약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안 된다. 신체적으로 아플 때 치료를 받는 것처럼 정신 장애도 치료를 받아야 중독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중독이라는 질병을 알고 이해하면 재발 위험도 감소한다"면서 "가족의 충분하고 따뜻한 사랑과 돌봄이 필요하며, 중독자가 처벌 낙인 수치 대상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인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범국가적인 마약류 중독 예방을 위한 조기 교육과 직장 내 마약 검사 등 사전 예방 정책이 필수다. 중독자들의 사회 복귀 지원 체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