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낙하산을 한 번 사용하고 버렸다. 원단인 나일론은 부드러우면서도 질겼다. 피난민들이 재활용해서 옷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낙하산 블라우스'였다.
문화재청은 17일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를 비롯해 '1960년대 신생활복', '일제강점기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를 국가등록문화재로 예고했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낙하산 블라우스는 디자이너 최경자씨가 제작한 제품이다. 폐낙하산을 재활용해 만든 옷이 인기를 얻자 별도로 수입 나일론 원사를 편물로 제직해 만들었다. 당시 나일론 섬유는 사치품으로 분류돼 수입이 금지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여성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 시대 상황과 편물 및 봉제 기술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1960년대 신생활복'도 최경자씨가 제작한 의상이다. 신생활복이란 정부가 국민의 의생활을 개선하고 사치한 옷차림을 없애자는 뜻에서 제정한 표준 복장이다. 모직 70%에 면직 30% 이하의 옷감으로 화려하지 않게 제작하도록 했다. 해당 의상은 원피스형이다. 신생활복의 표준안을 재해석해 저고리와 치마를 분리하지 않았다. 저고리를 단추로 여미고 탈부착형 고름을 달아 장식 기능을 더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민 재건 운동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물"이라며 "생활복식사는 물론 한복의 현대화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는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집된 아들의 무사 귀환을 바란 어머니가 직접 만든 유물이다. 제작에는 러일전쟁 전후 생긴 천인침(센닌바리)이 영향을 미쳤다. 한 조각의 천에 여성 1000명이 붉은 실로 매듭을 만들어 무운 장구와 무사함을 기원한 일본 풍습이다. 국권 침탈이 우리 문화의 깊숙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유물을 착용한 이의 징집 시기, 자대 배치 및 전역 날짜, 아내의 창씨명 등 징집 기록은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강제동원자 유수명부'에서 확인된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엽서'와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고 전했다. 전자는 이육사가 1930년대 당시 근황을 담아 친척과 친구에게 보낸 친필 편지와 엽서다. 후자는 1920년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함께 건립돼 독립운동과 사회계몽 활동이 이뤄진 장소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