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기자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낸다!’ 도발적인 문구로 글쓰기 연재를 시작한 작가가 있다. 한 달 만원에 월화수목금 매일 글을 받아보는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 작가다. 학자금을 갚기 위해 시작한 캠페인은 수많은 독자를 끌어모았다. 유쾌하게 편견을 비틀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입소문을 타면서다. 지금은 부모님이 소속직원으로 있는 출판사까지 운영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헤엄출판사’에서 만난 이슬아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작가였지만 원래부터 글을 잘 썼던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이 작가가 본격적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한 건 ‘어딘글방’에서다. 이 작가는 "10대 여자애들이 어딘이라는 스승 밑에 모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는 모임이었다"며 "7년 정도 다니면서 나름의 수련을 하다 보니 데뷔를 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서 ‘상인들’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한 바 있다.
글방에서는 ‘합평’이라 불리는 살벌한 피드백이 오갔다. 글을 잘 쓰는 동료에 대한 부러움과 속상함, 창피함이 뒤섞여 찾아오기도 했다. 이 작가는 주로 ‘글이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고 지나치게 사적이고 개인적이다’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열려있고 공부를 많이 한다면 개인적인 이야기 역시 아주 정치적일 수 있다"는 게 이 작가의 생각이다.
지금도 이 작가의 글감은 대개 주변 일상에서 온다. "옛날에는 판타지나 블록버스터를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조금 있었어요. 이제는 주변 인물의 명대사를 잘 메모해두는 편이에요. 시대가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와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만나는 순간이 주로 글감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작가가 특히 아낀다고 밝힌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도 유명하지 않은 이웃어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눈 뒤 쓴 책이다.
그의 다채로운 직업경험 역시 글로써 종종 나타난다. 이 작가는 잡지사 기자, 카페 알바, 누드모델, 웹툰 작가로 일했고 유명해진 이후에도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의 후원회장이기도 하다. 2014년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글쓰기 교사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아파트에 전단지를 붙여 만난 2명의 아이와 시작한 글방이 유명해지면서 6년 동안 전국을 오가는 보따리 글장수로 일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되려 본인이 가장 많이 배웠던 이야기를 ‘부지런한 사랑’이란 책으로 출간했다.
올해 2월부터 한 달간 연재했던 일간 이슬아의 테마 ‘가녀장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중년남성이 당연하게 주체로 여겨지는 가부장제 사회를 꼬집는 시트콤이다. 가녀장이라는 주제는 허구가 가미됐지만 본질적으로 이슬아네 얘기다. 실제로 이 작가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출판사에는 엄마 ‘복희’와 아빠 ‘웅이’가 고용돼있다. 소설처럼 살림 노동 비용을 월급에 포함하고 있다. 이때도 이 작가는 "어떻게 해야 세상에 있는 한 가족, 남 일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인 고민과 주제에 닿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해당 시리즈는 일간 이슬아 중에서도 호응이 좋았던 특집호 중 하나다. "가부장의 ‘아비 부’를 ‘계집 녀’로 바꾸면 가녀장이 되잖아요. 그 한 글자를 바꾸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생각을 해봤어요. 기본적으로 명랑하고 재밌는 이야기라서 읽으시기에 부담이 없으셨을 것 같아요. 혁명을 일으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일상에서 짜릿한 변화를 도모하는 가족의 이야기라서요." 이 작가는 현재 가녀장의 시대의 드라마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이 작가는 일간 이슬아가 이렇게 잘 될 줄 몰랐다고 한다. 2018년 2월 학자금 대출 2500만원의 상환이 시작되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게 일간 이슬아다. 구독을 신청하면 글을 써 이메일로 보내준다. 출판사나 지면의 도움은 없다. 잘하면 50명의 구독자가 모이겠거니 생각한 캠페인은 지금도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 작가는 "다른 작가들 사이에서도 구독의 물결이 많이 시작됐다"며 "(작가의) 생계유지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잘 된 일 같다"고 언급했다.
이후 이 작가는 헤엄출판사를 세웠다. 출판사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이 작가는 "돈 많이 벌려고 만들었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다만 출판사를 경영하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작가는 "보통 인세를 10% 받으니까 적다고 느껴서 차렸는데 일을 해보니까 왜 10%인지 알겠다"면서 "출판이라는 게 생각보다 아주 많은 노동자가 개입돼야 하나의 책이 나오는 거였다. 글만 잘 써서 되는 게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이 일한 결과구나를 배웠다"고 털어놨다.
이슬아의 글은 본인과 친구, 이웃의 말에서 좀 더 넓은 사회에 호소하는 글로 넓어지고 있다. 이 작가는 자신을 ‘비건 지향인’으로 부른다. 이 작가는 "동료 작가의 책을 읽기 전까지 비건이 굉장히 윤리적으로 강박 있는 사람들이 유난스럽게 하는 건 줄 알았다"며 "엄청나게 문제적인 시스템이고 아주 고통스러운 사육 방식을 거치는데 그것에 일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비건으로 건강해진 면이 있고 그런 점에서 제 글이 얻게 된 정치성과 사회성이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이어 이 작가는 "100% 완벽한 비건이 될 수가 없다. 비건을 하려고 하지만 이 시대에 동물의 살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완벽하지 않지만 지향하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비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서는 "채식이 육식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 읽히기도 하는데 비건한테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한국 안에서 비거니즘에 대한 논의가 뒤처지고 있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이 작가는 기후위기 역시 비거니즘과 긴밀히 연결돼있다고 본다. 이 작가는 "날씨는 해마다 기후 재난에 가까워지고 있고 어떤 분들에겐 이미 왔다"며 "최대한 그 속도를 늦추게 하는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느끼고 그 변화라는 게 사실 각자 할 수 있는 것 모든 것을 총동원하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이슬아 작가에게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지 물었다. 이 작가는 소박하면서도 어렵고 소중한 목표를 들려줬다. "친구들에게 아주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는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고용하고 있는 엄마 아빠의 고용주로서 월급 따박따박 잘 주고, 그들이 해온 블루칼라 노동의 권위에 감사를 잘 드리는 출판사 대표가 되고 싶어요. 재밌고 짜릿한 글도 잘 쓰지만 필요한 얘기도 너무 잘하는구나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작가가 되고 싶고요."
자신의 글을 좋아하고 잘 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이슬아 작가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운동과 몸 관리 잘 챙기면서 하셨으면 좋겠고요. 어차피 글쓰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잘 써지는 것은 자동으로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이슬아는 작가이자 출판인이다. 수필, 소설, 칼럼, 인터뷰, 서간문, 서평 등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한다. 2013년 단편 소설 「상인들」로 데뷔한 이후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발표해왔다. 2018년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출판계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켰다. 기성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독자를 모아 독립적인 연재 방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일간 이슬아》를 통해 독보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저서로는 『일간 이슬아 수필집』, 『심신 단련』, 『깨끗한 존경』, 『부지런한 사랑』 등이 있다. 2019년 헤엄 출판사의 대표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10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