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원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행보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으며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외환당국이 시장 개입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강달러 심화에 대응해 달러 매도를 늘리는 한편, 국민연금과 1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며 원·달러 환율 상승압력을 낮추려고 노력 중이지만 Fed의 추가 긴축 경계와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 등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1410원대를 돌파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장 마감 전 등락을 거듭하다 외환 당국의 개입 경계감으로 1409.3원에 거래를 마쳤지만 달러 초강세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당분간 환율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는 112선을 훌쩍 넘으며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Fed가 지난 2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면서 점도표까지 상향 조정하자 시장은 잔뜩 얼어붙은 분위기다. Fed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담은 점도표에 따르면 기준금리는 올해 말 4.4%, 내년 4.6%까지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기존 전망치보다 최대 1%포인트 높다.
외환당국은 연일 구두개입과 실개입을 통한 시장 안정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전날 오후 비상경제 TF 회의를 개최하고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변동성을 보이는 우리 금융·채권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방향을 논의했다"며 "채권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필요시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최근 달러 거래를 하는 외국환 은행들에 주요한 달러 매수·매도 현황과 각 은행의 외환 관련 포지션에 대해 보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불필요하게 달러를 사들이지 말라는 경고로, 원·달러 환율 급등 분위기 속에서 환투기를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환율 우려에 대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필요한 순간에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한은·기재부는 국민연금과 다음달 1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도 체결하기로 했다. 스와프가 체결되면 국민연금은 올해 말까지 100억달러 한도 내에서 한은에서 직접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 이 경우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를 위해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는 수요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기재부는 "국민연금은 거래상대방 위험 없이 해외투자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으며, 국민연금의 현물환 매입 수요가 완화되면서 외환시장의 수급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민연금의 연간 신규 환전수요가 300억달러가 넘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시장에선 외환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원·달러 환율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23일(현지시간) '페드 리슨스(Fed Listens)' 행사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현재 고물가 저성장의 현 미국 경제를 '뉴노멀'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며 이례적인 혼란에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ed가 매파적 성향을 이어간다면 환율이 단기적으로 145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고, 한국은 최근 무역수지 적자 확대 등 수출 상황도 좋지 않아 원화 약세가 가속화될 수 있어서다. 신한금융투자는 "원·달러 환율은 대외 강달러 압력 속 완만한 상승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며 "다음주 발표가 예정된 8월 산업활동동향과 9월 수출입지표에서 뚜렷한 한국 경기 개선 기대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