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기자
[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이르면 다음달 기금운용위원회에 주주대표소송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수탁자지침 개정안을 재상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소송 수책위 일원화 방안이 위법하지 않다는 외부 법률 자문 결과가 나오면서 관련 논의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3일 신왕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은 "국민연금수탁자지침 개정안과 관련해 법률 자문을 받았고 대표소송 수책위 일원화가 '적법'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이 결과를 가지고 다시 소위원회를 거치고 9월달께 기금위에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신왕건 위원장은 "대표소송과 관련해 소위원회 구성이 됐는데 위원장인 전임 이사장이 사퇴를 하시는 등 몇가지 이슈가 있어서 그 사이에 법률 검토를 받는 사안이 진행이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신 위원장은 "이제 법적 검토 결과를 가지고 소위원회가 계속될텐데 여기서 합의가 되지 못한다면 다시 기금위에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로펌 3곳에 '국민연금수탁자지침 개정안'의 위법성 검토를 의뢰해 최근 '적법하다'는 의견을 받았다. 수책위에 소송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고 절차적 정당성도 결여됐다는 경영계의 주장에 정면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난 정부가 대표소송의 권한을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지침 개정을 추진했으나 논란이 커지자 기금위 소위는 법률 자문을 5월에 의뢰했다.
국민연금은 그간의 관련 법령 변경 사항 등을 고려해 작년 12월에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 대표소송 관련 가이드라인을 손질하는 안건을 상정하는 등 개정작업에 나섰다.
2020년 12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주주활동에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를 대상으로 제기하는 '다중대표소송'이 추가된 내용을 반영해 종전 '주주대표소송'으로만 국한됐던 가이드라인 내 문구를 '대표소송'으로 바꾸고 소송 실무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맡되, 소송제기 의사결정은 기금운용위 산하의 수책위가 담당하도록 일원화한 게 주요 내용이다.
지금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내부 투자위원회)가 결정하되, 판단하기 곤란해 수책위에 요청하거나 수책위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이 회부를 요구한 경우 수책위에서 결정하게 돼 있다. 수책위는 사용자(기업)·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가 금융·경제·자산운용·법률·연금제도 분야에서 각각 3명씩 추천한 민간 전문가 9명(상근전문위원 3명 포함)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 산하 전문위원회이다.
대표소송은 주주가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주주권 행사 수단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미국 등에서는 연간 430여건의 대표소송이 제기될 만큼 활발하다.
회사 임원(이사 및 상법상 업무 집행지시자)이 불법행위나 임무해태로 기업에 손해를 끼쳤는데도 기업이 피해복구를 위한 조처를 하지 않고 책임추궁을 게을리하는 경우에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주주가 기업을 대신해서 해당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주주가 원고이고 불법 등을 저지른 임원이 피고이지만, 주주가 승소하면 기업이 손해를 배상받는다.
이를테면 지배주주인 이사가 개인 이익을 위해 회계 조작으로 회사자금을 횡령하거나 입찰 시 사전 공모 등을 통해 가격담합을 했다가 걸려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 등에 대표소송으로 회사 손해를 보전할 수 있다. 이사의 위법행위로 인해 명확하게 큰 규모의 손해를 본 회사가 손해회복조치를 하지 않을 때 법령과 관련 지침의 범위 내에서 회사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회사를 대신해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을 실시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소송은 상법에도 명시된 정당한 소수주주권이다. 상법 제403조는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일정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를 말한다)를 가진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주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장회사에 대한 대표소송은 1년에 평균 2건만 제기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기관투자자들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소액 개인 주주들만으로 대표소송 제기에 필요한 지분요건을 갖추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