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재기자
[아시아경제 곽민재 기자] "10년간 다니던 삼성생명을 퇴사하고 서점을 열었어요. 평소 책 읽는 걸 좋아해 문장에 밑줄도 긋고 책 모퉁이에 낙서한 책을 비치해 뒀는데 직장인들이 읽는 시간을 절약해 좋다고 자꾸 이 책을 웃돈 주고 사는 거에요. 빼곡히 낙서된 ‘차별화의 천재들’이란 중고책은 인기가 좋아서 3권이나 더 판매됐죠. 문득 책에 대한 누군가의 낙서가 콘텐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어요."
도서 기반 콘텐츠 스타트업 ‘서사’의 정도성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서사는 바쁜 현대인을 위해 책을 읽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월 5900원을 내고 서사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구독하면 책을 짧은 영상, 텍스트, 오디오, 카드뉴스 등 압축적인 형태로 제공한다.
정 대표는 "책을 기반으로 하지만, 도서의 일부를 발췌해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해석을 더해 맥락을 제공하는 등 서사만의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서사만의 ‘낙서’를 통해 ‘일하는 사람에게 성장하는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모토"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서사의 콘텐츠에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정 대표가 가장 고심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 "제가 밑줄 긋고 낙서한 책을 직장인들이 웃돈 주고 산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서점 주인이었기 때문이더라고요. 매일 책을 들여다보는 서점 주인의 책에 적힌 낙서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서사는 이에 착안해 각 분야 전문가에게 원고를 맡기는 방식으로 콘텐츠에 대한 신뢰를 확보했다. 가령 ‘부의 감각’이란 콘텐츠를 만들 때 행동경제학 책은 현직 경제학과 교수를 섭외해 원고를 받고, 금융과 관련된 책은 시중 은행의 부장에게 일임하는 식이다. 정 대표는 "초기 시간과 돈을 들여 제작했던 100여개의 콘텐츠가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과감히 폐기할 정도로 서사는 콘텐츠의 퀄리티와 독자의 신뢰를 중시한다"고 했다.
무엇을 읽을지 찾아 헤매는 현대인의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 맞춤형 독서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것도 서사만의 특징이다. ‘북 인사이트’, ‘마음챙김’, ‘부의 감각’ 등의 콘텐츠를 산업과 직무, 행동성향, 상황,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즘 총 4가지 큐레이션을 통해 콘텐츠를 맞춤 제공한다. 특히 ICRU(I Can Read You) 16가지 행동성향에 따라 콘텐츠 유형을 분류하는 기술은 서사의 독자적인 특허 기술이다.
삼성생명 법인영업 부서에서 기업 고객을 관리하고 큰 규모의 거래를 담당하던 그는 뒤늦게 자신이 콘텐츠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삼성생명의 관계사이자 기업교육 전문기업인 삼성멀티캠퍼스로 이직했고, 결국 창업에 나섰다. "전에 받던 연봉의 절반 수준인 관계사로 이직하는 건 큰 결단이 필요했어요. 그래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후회는 없었죠.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서사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서사는 지금까지 김기사랩, 엔젤투자자 등으로부터 누적 약 10억원의 시드 투자를 받았다. 올 하반기 프리시리즈A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대학병원, 금융사 등 B2B 기업에 주로 콘텐츠를 공급했지만, 지난 2월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한 만큼 B2C 시장에서도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정 대표는 서사의 경쟁자로 ‘밀리의 서재’나 ‘윌라’가 아닌 콘텐츠 기업인 ‘넷플릭스’를 꼽는다. 지식 콘텐츠의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의 ‘K-넷플릭스’가 되는 게 그의 목표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