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지난해부터 치매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던 강모씨(52). 어머니의 치매 장기요양등급은 5등급으로 병세가 심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형제들은 갈라졌다. 어머니의 돈을 추가 치료비로 사용한 게 화근이 된 것. 형제들은 매달 20만원씩 어머니에게 용돈을 보내주는데 왜 어머니의 돈을 따로 쓰냐고 쏘아붙였다. 결국 강씨는 형제와 고성을 오가며 싸운 끝에 어머니를 더 이상 돌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형제들은 용돈을 주는 건 사실상 요양사로 고용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강씨는 "어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자마자 형제가 돈 문제로 갈라졌다. 어머니를 쉽게 버리고 떠날 수도 없어 형제와의 갈등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40대 남성 A씨는 지난 3월 19일 오전 4시쯤 제주시 애월읍 해안도로를 달리다 차량을 절벽으로 몰고갔다. 그의 차에는 치매를 앓는 80대 노모가 타고 있었다. 노모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던 그는 사고 직후 추락한 차량에서 혼자 빠져나와 119에 신고했다. 그는 최근 존속살해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았다. A씨는 작년 하반기부터 치매 증상이 악화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이 과정에서 가족과 갈등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고령화 사회에 치매 등 만성질환을 겪는 고령자와 그 가족의 갈등이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치매환자가 늘면서 매년 1만2천여건 이상의 치매환자의 실종사건이 경찰에 접수된다. 그중 상당수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이 와정에서 환자 본인과 그 가족, 주변의 고충은 심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 한해 6566건이던 치매환자 실종건수는 2018년 1만2131건, 2019년 1만2479건, 2020년 1만2272건 등을 증가 추세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 최근 3년간 미발견(실종 접수 후 찾지 못한)인원은 8명, 3명, 3명 등이며 지금까지 누적으로는 133명의 치매환자가 실종돼 찾지 못하는 상태다.
재산 분쟁을 넘어 더 이상 치매 노인을 돌보지 못해 방치하거나 학대하기도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 112 신고접수 건수는 1만1918건으로 전년 대비 22.8% 증가했다. 지난달 26일 존속살해 및 시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B씨(25)는 지난 1~5월 충남 서산 다세대주택에서 돌보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치매와 당뇨 등 질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B씨는 처방된 약이나 음식을 먹이지 않았다. 아울러 B씨의 아버지의 갈비뼈가 부러져 있는 등 폭행한 정황도 발견됐다. B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후 한 달 동안 냉장고에 시신을 넣어 유기하기도 했다.
치매환자를 상대로 한 범죄도 늘고 있다. 지난 6월23일 수원고법 형사2-3부(이상호·왕정옥·김관용 고법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를 받고 있는 C씨(69)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C씨는 2014년 9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치매환자 D씨의 계좌에서 200여차례에 걸쳐 13억7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D씨의 계좌 비밀번호를 알았던 C씨가 은행 ATM기로 자신의 계좌에 현금을 이체했던 것. C씨는 치매였던 D씨가 모든 재산 관리를 자신에게넘겼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며 법정에 증거를 제출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필체 감정 결과 ‘감정불능’이란 결론을 내렸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지난해 노인 의사에 반하여 재산 또는 권리를 빼앗는 ‘경제적 착취’는 406건이었다. 경제적 착취는 2018년 381건이었지만 2019년 이후 400건 밑으로 내려오질 않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재산상 피해를 피하기 위해 택하는 방법은 성년후견인 제도다. 성년후견인 제도란 치매 등의 이유로 판단·결정능력이 없거나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어려운 사람을 대신해 가정법원이 의사결정할 법적 후견인을 정해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치매환자들은 성년후견인 제도로 재산을 둘러싼 갈등을 피하고 스스로도 꾸준히 치료 받을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성년후견인을 신청한 건수는 2020년 기준 8180건으로 전년 대비 약 17% 증가했다. 이는 2016년(3716건)보다도 두 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하지만 성년후견인 제도에도 허점이 있다. 성년후견인을 신청했던 사람은 법원의 승인과 상관없이 성년후견인 취소가 가능하다. 법원이 자신이 아닌 변호사 등 제3자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했을 때 취소하면 아예 성년후견인 지정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매 걸린 부모님의 재산을 노리는 자녀들은 이러한 허점을 악용할 수 있는 셈이다.
박웅희 변호사는 "성년후견인 제도를 활용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치매환자 수에 비해 적은 것도 사실"이라며 "자신이 성년후견인이 돼 부모님 재산을 통해 치료비를 충당하려 했는데 뜬금없이 변호사가 지정된다면 생각지도 못한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배우 윤정희가 대표적 예시다. 윤씨의 성년후견인 자격을 두고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윤씨 친동생이 갈등을 겪었다. 2019년 5월 윤씨가 파리로 거처를 옮긴 이후 윤씨 친동생 3인은 백씨와 윤씨의 친딸 백진희씨를 대상으로 프랑스 법원에서 재산 및 신상 후견인 지위 이의 신청을 제기했다. 친동생들은 프랑스 법원에서 패소했고 올 3월 서울가정법원도 딸 백진희씨를 성년후견인을 지정했다. 그럼에도 윤씨의 동생 손모씨는 서울가정법원의 결정에 대해 항고장을 제출하며 여전히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압박을 받고 있는 부양자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함경애 신라대 상담치료대학원 교수는 "치매 노인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은 자식이 부모님을 무조건 봉양해야 한다는 유교적 사상에서 비롯됐다"며 "유교 사상이 점점 해체되고 있는 등 국가가 치매 노인 관리나 부양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과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