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루트] '그때 그랬더라면…' 전쟁과 모터사이클

'도솔산·피의 능선·펀치볼' 등‥중공군 개입 후 38도선 중심 격전
'백석산 전투', 휴전선 결정의 마지막 전투‥ 전초진지 쟁탈전
북한군 제603 모터사이클 부대, 수원 점령 후 국군 병참로 차단

강원 양구 '피의능선' 전투 [양구군]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6.25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면서 자주 느끼는 후회, 즉 '그때 그랬더라면…' 이란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에게 만주와 중국에 대한 원자폭탄 사용을 허락했더라면…', '맥아더 장군의 주장대로 미국이 중국과의 전면전을 벌였더라면…', '국군에도 탱크가 있었더라면…' 등 이미 일어난 상황을 바꿈으로써 생각하는 이들로 하여금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일찌감치 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분단 없이 남북이 하나가 되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6.25 전쟁 초기, 남북한의 병력과 무기들을 비교하면서도 '그때 국군에도 군용 모터사이클이 있었더라면…' 이란 생각과 후회를 해본다.

[코리아루트]는 강원도 양구 격전지를 재조명하고, 전후 세대에게 호국정신과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양구전쟁기념관'을 찾았다.

'그때 그랬더라면…' 이란 아쉬움과 함께 한 모터사이클은 미국의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최초의 어드벤처 투어링 '팬 아메리카 1250 스페셜(Pan America 1250 special)' 모델이다.

서울에서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양구전쟁기념관(양구통일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참전국 국기와 펀치볼 도솔산지구 전투 기념비였다.

양구통일관 내 펀치볼 도솔산지구 전투기념비 [라영철]

양구는 6.25 전쟁 개전 당시 최전방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공군 개입 후 전선이 중부지역의 기존 38도선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다시 치열한 격전지가 됐다.

도솔산, 애우산, 백석산, 피의 능선, 펀치볼, 가칠봉, 단장의 능선, 949고지,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 수많은 격전이 벌어진 곳이 바로 양구다.

양구 북동방에 있는 도솔산(동면 팔랑리, 해안면 만대리 일대)에서는 1951년 6월 4일부터 6월 20일까지 17일간 국군을 포함한 유엔군과 중공군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특히, 도솔산 전투는 휴전회담에서 대두될 군사분계선 위치 선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므로 피차간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전술의 요충지였다.

983고지의 '피의 능선' 전투는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열리자마자 중단하면서 전개된 그해 가장 대표적인 고지 쟁탈전이었다.

이 전투는 2004년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1000만 명의 관객 동원에 성공했던 『태극기 휘날리며』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인 북한군(일명 깃발부대)과 국군 간의 격전장이기도 하다.

국군과 유엔군은 2700명의 희생을 치른 끝에 간신히 피의 능선을 점령했다. 북한군은 1만 5000여 명의 피해를 보고 고지에서 퇴각했다.

휴전 회담장 부근 북한군 모습 [양구군]

이를 지켜본 종군기자들은 983고지 일대를 피로 물들인 '피의 능선'이라 이름 붙여 보도했다.

또 다른 고지전인 '백석산 전투'는 1951년 8월 중순부터 10월 하순까지 중동부 전선의 양구 북방 20㎞ 지점(방산면)의 백석산(1142고지)을 중심으로 국군(제7사단, 제8사단)과 북한군(제12사단, 제32사단)이 치열한 고지전을 벌여 국군이 승리한 공격 전투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 때까지 전초진지 쟁탈전으로 일관함으로써 '백석산 전투'는 사실상 오늘의 휴전선을 결정하게 된 마지막 전투였다.

■ 전쟁과 모터사이클

할리데이비슨 WLA 750cc 군용 모터사이클 (1944) [milweb]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간혹 북한군이 모터사이클을 탄 장면을 볼 수 있다.

당시 북한군의 군용 모터사이클 '천리마'는 독일군의 상징인 사이드카 R71을 소련의 모터사이클 제조사 우랄이 M72라는 모델명으로 복제해 기술지원을 받아 제작한 군용 모터사이클이다.

영화 『포화속으로』 에서 북한군 진격 대장 박무랑 역을 맡은 배우 차승원 씨가 탔던 사이드카가 '천리마'다.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가 러시아 국방부 중앙문서관리소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6.25 전쟁 초기 모터사이클부대를 투입해 수원 방면으로 고속 진격, 국군의 병참로를 차단하려 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이틀 후부터 제603 모터사이클연대를 이천~수원 방면으로 투입, 수원을 점령한 뒤 국군의 병참로를 차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소련제 모터사이클로 구성한 북한군은 소련군의 종심기동전략(OMG) 전술을 원용한 작전 개념으로 편성됐다.

모터사이클부대는 북한군 12사단이 국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면 춘천~홍천~원주 방면의 국군 후방으로 진출해 현지에서 활동한 유격부대들과 합류, 국군의 병참선을 마비시키고 서울로부터 후퇴하는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처럼 모터사이클은 적은 연비에 비해 넓은 작전 반경, 기동력을 바탕으로 전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 '포화속으로' 장면 [유튜버 화면 캡처]

특유의 스피드와 기동성으로 거침없이 내달림으로써 다른 어떤 장비보다도 뛰어난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들에 따르면, 군용 모터사이클의 전성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큰 피해를 입지만, 전쟁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룬다.

독일군은 자국의 뛰어난 공업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산한 모터사이클을 문서 전달, 정찰, 전선 통제 등에 활용했다.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미국, 영국 역시 모터사이클 활용을 크게 늘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미군은 배기량 737cc V트윈 엔진을 장착한 WLA 모델 9만 대 이상을 군용으로 사용했다.

모터사이클을 널리 활용했던 미군은 1983년 그레나다, 1989년 파나마 침공 작전 당시부터는 본격적으로 모터사이클을 전술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걸프전 당시에는 군용 모터사이클의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기회를 마련했다.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를 제거하는 데는 더없이 제격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모터사이클 [milweb]

미국은 각종 장비 편람에서도 모터사이클을 단순히 기본적인 차량 장비가 아닌 전투 장비로 분류했다.

영국은 1937년 군용 모터사이클로 개발한 M20을 1950년까지 12만 6000대를 생산했다.

접이식 모터사이클인 웰바이크(wel bike)를 개발해 노르망디 상륙작전, 안지오 전투, 마켓가든 작전 등에 투입했다.

최근에 와서는 각국은 군용 모터사이클을 특수전에 많이 활용한다. 일반적인 전투 때는 주로 정찰, 헌병의 전장 관리 등으로 이용한다.

유난히 산지가 많은 일본은 험지를 주파하는데 모터사이클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더구나 뛰어난 모터사이클 제조사가 즐비한 만큼 그 이용도나 사용 범위에서도 여느 국가를 능가할 정도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는 수년 전부터 부분적으로나마 모터사이클을 운용하고 있으나, 아직은 크게 활용하고 있지는 않다.

전술을 위한 부대가 아닌 단순히 전선 통제, 연락 등으로 쓰는 실정이다.

참고·인용: 기동전의 만능 길잡이 군용 모터사이클 / 김진태 [국회도서관]

근대화의 양구 [강원도 양구군]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모터사이클 협찬 포함)

milweb (군용 모터사이클 사진)

라영철 기자 ktvko2580@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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