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부실 전부터 신보가 보증 빚 갚아준다…'도덕적 해이' 논란

금융위, 신보법 시행령 일부개정안 입법예고
부실 아니어도 신보가 대신 빚 갚도록 개정해
"90~100% 보증상품도"…도덕적 해이 우려
지원 대상과 상품 기준 불명확한 것도 문제점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보증부대출을 조기에 채무조정해준다. 사업자의 경영정상화가 어려울 경우 신용보증기금이 대신 상환하기로 약속된 대출임에도, 앞으로는 어려워질 가능성만 있어도 국가가 대신 갚아줄 수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불거진 도덕적 해이 논란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일 금융위원회는 ‘신용보증기금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제22조 ‘보증채무이행청구사유의 특례’ 부문에 새로운 조건을 추가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보증채무 이행을 대출부실화 이전에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았다. 기존과 달리 경영정상화가 어려운 경우에 이르지 않아도 신보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신해 채무를 갚아준다는 뜻이다.

신보는 담보나 신용이 약한 기업들이 금융기관에서 원활하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보증을 서는 기관이다. 금융사는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신보가 대신 돈을 갚아주기 때문에 신용도가 낮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도 대출을 내준다. 현행법에서는 금융사가 신보에 돈을 대신 갚아달라고 요구하려면, 소상공인·자영업자가 파산이나 해산, 폐업 등 경영정상화가 명백히 어려워야 한다.

금융위는 이번 개정안으로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새출발기금)’의 법적근거를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부실이 발생하기 전에 부실우려차주들의 빚을 신보가 대신 갚아줄 수 있어 신속한 채무조정이 가능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고심깊은 신보…부실우려만 돼도 대신 빚 갚아야 할 판

문제는 도덕적 해이다. 신보의 보증상품 중에서는 보증비율이 90~100%에 달하는 것들도 상당수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원칙적으로 부실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신보가 대부분의 돈을 갚아줘야 한다. 금융당국의 새출발기금 발표 이후 자영업자들이 모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꼬박꼬박 빚을 갚는 사람들이 바보"라는 등의 자조섞인 메시지까지 올라오고 있다.

부실우려차주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개정안은 ‘국가정책적으로 신속한 보증채무 이행의 필요성이 있다고 금융위원회가 인정하는 경우’라고만 명시했다. 통상 은행들은 부실우려채권을 60~90개월 간 연체한 경우로 본다. 정책시행일을 고려하면 이미 부실우려차주에 해당하는 소상공인은 일부러 돈을 갚지 않고 버티다 부실차주로 갈아탈 수도 있다.

신보에서는 이번 정책으로 고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정적인 예산으로 더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빚을 갚아줘야 하는데,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6월말 기준 신보의 보증규모는 60조원에 달하며, 이 중 2020년 5월부터 시작된 '소상공인 위탁보증' 규모는 7조원이다. 조기에 빚을 갚아주기 시작하면 대위변제율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이미 지역 신용보증기관에서는 정부의 방침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상훈 신용보증재단중앙회장은 지난 19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의 경영 정상화를 지원할 때 리스크를 줄이려면 지역신보의 기본재산을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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