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연기 외길 설경구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26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기자회견
배우 특별전 '오아시스'·'공공의 적'外 7편 상영
"인생작은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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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이창동 감독님께 '박하사탕'(2000)에 왜 저를 캐스팅하셨냐고 물었더니 평범해서 그리기가 쉽다는 거예요. 캐릭터가 딱히 정해지지 않은 얼굴이라서 그런지요. 감독님께서 '설경구는 설경구다'라고 하셨어요."(설경구)

이창동 감독의 대답은 22년 후 그를 극명하게 상징하는 말이 됐다. 배우 설경구(55)의 29년 연기 세계를 26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BIFAN) 배우 특별전 '설경구는 설경구다'에서 집중 조명한다. 8일 오후 경기 부천시 길주로 고려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굴곡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생각이 깊어지더라"며 "영원히 못 풀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의 연기 인생을 되짚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BIFAN은 2017년부터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를 선정해 특별전을 진행했다. 전도연·정우성·김혜수에 이어 3년 만에 재개하는 특별전의 주인공으로 설경구가 나선다. '설경구는 설경구다'(THE ACTOR, SEOL KYUNG GU)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 설경구를 상징한다.

그는 "배우로 일하면서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격상 특별한 자리의 주인공이 돼 앉는 것도 어색한 사람"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1993년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설경구는 극단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거쳐 '꽃잎'(1996)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러브스토리'(1996)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유령'(1999)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얼굴을 비췄다.

"영광스럽지만 부담스러운 자리라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대학교 2학년 때인 1993년부터 사회에 나와서 연기를 시작했더라고요. 햇수로 30년이 됐어요. 그 숫자가 저한테 잘 버텼다는 의미고요. 40~50년 넘게 연기해오신 선배들도 계시지만, 특별하게 생각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그다음부터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오늘 기자회견도 영광스럽고,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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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설경구를 있게 한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이다. 영화는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 제37회 대종상 신인남우상, 제21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등 10개의 상을 가져다줬다.

이후 '공공의 적'(2002) '오아시스'(2002) '용서는 없다'(2010) '나의 독재자'(2014)로 청룡영화상·대한민국영화대상·대종상·백상예술대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한국영화제작가협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실미도'(2003) '해운대'(2009)로 10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으로 3번째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자산어보'(2021)로 5개의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킹메이커'(2022)로 올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인생작을 묻자 주저 없이 '박하사탕'을 꼽은 설경구는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한 작품에 오만가지 감정이 들어가는데 '박하사탕'만큼 말초신경까지 끌어모은 작품도 없을 거다. 더군다나 당시에 카메라 경험이 없었을 때라서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공공의 적'(2002)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설경구는 "한때 제 이름이 '박하사탕'이었던 적이 있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다음에 '공공의 적'이 흥행하니까 그 이름이 사라지더라. 새벽에 길을 가다 발견한 웨이터의 명함에 강철중이 쓰여있더라. 상업적으로 저를 알린 영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박하사탕'·'오아시스'·'공공의 적'·'실미도'·'감시자들'·'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자산어보' 등 배우가 직접 선택한 7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설경구는 "'실미도'는 최초 1000만 영화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고, '자산어보'는 촬영 과정이 힐링이었다. 섬에서 나오기 싫을 정도로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책자를 보면서 한 작품씩 떠올리니 아련해지더라. 제 작품을 보는 일이 왜 그렇게 부끄러운지, 찾아보는 편은 아닌데 특별전을 통해 30년 세월이 흘렀구나 체감했다"고 했다.

30년 뒤 또다시 걸어온 작품 세계를 돌아본다면 어떤 수식어가 붙길 바라냐고 묻자 설경구는 "갑자기 뭉클해지려고 한다"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개막식에서 특별전 관련 영상을 본 소속사 마케팅 본부장이 문자로 '가슴이 뭉클했다'고 해서 화를 냈어요. '회고전이냐? 특별전이지!' 했죠. 앞으로 30년 후면, 그때는 정말 회고전이 되겠네요. 질문을 들으면서 바로 떠올랐는데,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로 하고 싶습니다."

설경구는 "나이를 잘 먹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제 나이가 어느덧 중견을 넘어가고 있더라고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배우로서 잘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고요. 몸 관리, 얼굴 관리를 잘하면서 나이 드는 게 아니라 여러모로 저 사람이 나이를 잘 먹어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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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집행위원장은 "설경구는 30년 후에 틀림없이 회고전을 할 거라고 본다. 감독 입장에서 설경구는 여기저기 다 쓸 수 있는 얼굴이다. 대부분의 연기자는 가지고 있는 외적인 조건 등에 따라 달리하는데 어떤 역할이든 잘 해낼 거 같다.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찾는 배우라고 보고, 본인이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연기를 할 배우"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연기를 배우고 있다고 하면 이렇게 물어봐요. '연기가 배우는 거야? 가르치는 거야? 누구한테 배워?'라고요. 연기에 속성도 없고, 비법은 절대 없어요. 자신이 느끼는 거죠. 끊임없이 몰입해서 느껴야죠. 앞으로도 연기의 비법 같은 건 없지 않을까요."(설경구)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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