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비대면 진료, 합의 가능한 수준부터 시작하자

지난 2년 이상 진행된 코로나19 대유행이 가져온 비대면 사회로의 대전환 중 주목할 만한 분야 중 하나가 비대면 진료 내지 원격의료의 시행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24일 도입된 비대면 진료는 지난 5월6일 기준 473만건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재택치료 중 이뤄진 비대면 진료 약 550만건까지 합치면 1000만건을 넘었다. 다만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 전화상담·처방의 방법으로 한시적 허용된 것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다.

이제 코로나19가 대유행이 끝나가면서 비대면 진료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참에 이를 제도화할 것 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하겠다고 발표했고, 의사단체도 찬성 의견이 예전보다 많아진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도 비대면진료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국정과제 수행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으로 원격의료는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의료법 제34조 제1항에 따르면 원격의료 중 원격지 의사가 멀리 떨어진 의료인의 의료과정에 대해 지식이나 기술 조언을 하는 ‘원격자문’만이 가능하며, 의료인이 대면 진료를 대체해 원격으로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발행하는 ‘원격진료’, 의료인이 환자의 질병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상담·교육 등을 하는 ‘원격모니터링’은 금지돼 있다.

비대면 진료를 찬성하는 입장은 기존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의사와 환자의 패러다임을 환자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대도시와 지방의 격차 확대를 막을 수 있으며, 환자의 편의성이 증대되고 의료비 상승도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신산업 육성과 새로운 시장의 창출도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반대론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될 수 있고, 안전성의 문제, 개인정보 유출, 오진 가능성과 법적인 책임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원칙적으로 비대면 진료는 대부분의 검사가 불가능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안전한 진단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의 경험은 일단 안전성 문제나 대형병원 쏠림 현상과 같은 부작용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같이 폭넓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일단 이해관계집단 간 합의가 가능한 수준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분야부터 시작하는 것이 타당하다. 예컨대 최혜영 의원 안과 같이 재진 환자부터 의원급 중심으로 허용하는 방안, 대상자도 의료 취약지역이나 만성질환자, 거동이 불편한 환자 등으로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최고 수준의 의료인과 정보통신기술이 있음에도 이를 비대면 진료에 활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 없는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인 원격의료 금지가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해결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그 해결을 위한 기본 방향은 이해득실의 조정보다는 국민의 편익 증대에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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