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기후위기가 인류에게 식량난이란 끔찍한 재앙의 모습으로 닥칠 것이란 경고는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 같았지만 이미 우리 앞의 현실이 됐다. 다양한 식재료가 오르던 식탁은 식량 수급난으로 인해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수급 문제가 국내에 크게 대두된 발단은 '양상추 실종사건'이었다. 지난해 말 이상한파로 양상추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햄버거 프랜차이즈 등에서 양상추 빠진 제품을 제공한 것이다. 양상추가 부족해 작고 홀쭉해진 햄버거를 두고 '마카롱 버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지난 1~2월에도 기후위기에 코로나19로 인한 물류대란까지 더해져 양상추와 감자튀김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당시 맥도날드, 롯데리아 등 일부 매장은 감자튀김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후렌치후라이 대신 맥너겟과 치즈스틱 중에서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식탁의 매운맛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9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스리라차 소스의 제조사 '후이퐁'은 지난 4월19일 고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약 5개월 간 생산을 중단한다고 알렸다. 최근 캘리포니아에 닥친 최악의 가뭄으로 원재료인 할라피뇨 고추 작황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스리라차 소스는 중독성 강한 매운맛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왔다.
후이퐁은 "불행히도 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필수 재료(고추) 없이 우리는 어떤 제품도 생산할 수 없다"고 배경을 전했다. 이 회사는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멕시코 등의 농장에서 원재료인 고추를 확보해왔다. 하지만 최근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극심한 가뭄과 이상 기온이 이어지면서 품질은 물론, 생산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국민생선이었던 명태가 자취를 감춘 원인으로도 기후위기가 꼽힌다. 명태는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어장에서 매년 수만톤씩 잡혔지만, 기후변화로 수온이 상승하면서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수급난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전세계 식량지도가 변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물류대란과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악재가 겹쳤다.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6일(현지시간) 식량 위기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우크라이나 전쟁, 극단적인 날씨, 코로나19 등의 파급 효과로 수백만 명이 굶주림에 내몰렸다"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 아프리카에는 최악의 식량난이 닥쳤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 겹치면서 수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밀과 옥수수 등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아프리카는 밀의 4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크라이나의 작물 수확량이 크게 감소했고, 러시아군이 흑해 항구를 장악해 곡물 수출 활로도 가로막혔다.
한편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는 '세계 식량·농업 유전자 자원 조사' 보고서에서 "2055년까지 땅콩, 토마토, 콩 등 인간에게 중요한 식량 자원의 야생 종자 22%가 멸종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00~2000년 사이에 기후변화 때문에 전 세계 식용 식물 가운데 75%가 사라졌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