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ㆍ에이즈)와 결핵, 코로나19 등 감염성 질환의 급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격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역이나 임시 대피소, 건물 지하 등 폐쇄된 곳에 다수가 모여 있는 데다 검사, 치료 등 의료 서비스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1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전 우크라이나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정점을 찍고 감소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보건 당국의 방역 및 기초 보건 서비스가 사실상 중단됐고, 현재 감지되지 않는 전파가 상당한 상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수도인 키이우 지역은 65% 정도지만 몇몇 주에선 20% 수준에 그칠 정도로 낮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소아마비도 위험한 상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해 서부 지역에서 2건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다. 또 소아마비의 원인균인 폴리오 바이러스가 19명의 건강한 사람에게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 질병은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약 200명 중의 1명 꼴로 발병하기 때문에 실제 확산 정도는 드러난 환자 수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전투로 인해 지난달 1일부터 시작한 14만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아마비 접종을 중단한 상태다.
전파력이 강한 홍역도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2017년부터 홍역이 발생해 2020년까지 11만50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었다. 우크라이나 보건 당국이 이후 홍역 백신 접종에 힘써 접종률을 82%까지 올렸지만 아직까지 대규모 발병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게다가 하르키우 등 일부 지역에선 홍역백신 접종률이 50%에도 못 미치고 있는 형편이다.
결핵과 에이즈도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약을 써도 잘 낫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MDR TB)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가 중 한 곳이다. 매년 3만2000명 가량의 활성 결핵 보균자가 발견되며, 이중 3분의1이 다제내성 결핵으로 판명되고 있다. 특히 결핵에 걸린 사람들 중 22% 가량은 에이즈에도 감염되고 있으며, 에이즈 환자의 주요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에서 에이즈 환자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로 2020년 말 현재 인구의 약 1%인 26만명이 감염돼 있는 상태다. 특히 동성애자 중에선 7.5%, 마약 복용자 중에선 21%가 에이즈 환자다. 치료 상태도 열악하다. 전체 에이즈 환자 중 69%만 자신들의 상태를 알고 있으며, 57%가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법을 받아 53%가 바이러스 억제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달 중 인도로부터 대규모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받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최근 인근 국가인 폴란드로부터 긴급 치료제를 우크라이나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에이즈환자네트워크의 발레리아 라친스카는 네이처에 "이번 전쟁으로 우리는 10년 전으로 후퇴할 수 있다. 무차별 포격 때문에 환자들이 치료약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의료시설에 가더라도 그곳에 약품이 준비돼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