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기자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한국 사람이라면 관공서나 병원 등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 헷갈려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나이 셈법과 공공기관 등에서 쓰는 나이 셈법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이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만 나이' 사용을 의무화하자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17일 나이 기준을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일상에서 주로 쓰는 '세는 나이(한국식 나이)' 사용을 멈추고 세금, 의료, 복지 등의 기준인 만 나이를 표준화해 불필요한 혼선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나이 셈법을 둘러싼 논쟁은 해마다 반복된다. 연초가 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만 나이를 정착시켜달라', '한국식 나이 폐지하고 바로 세워 달라' 등 한국에서 통용되는 여러 가지 나이 셈법으로 불편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온다.
한국에서 쓰이는 나이 셈법은 3가지나 된다. 출생 때 1세가 되고 새해가 되면 동시에 한 살씩 늘어나는 세는 나이, 출생 때를 0세로 하고 1년이 지나 생일이 되면 한 살씩 더하는 만 나이, 출생 때를 0세로 하되 해가 바뀌면 한 살씩 더하는 연 나이가 있다.
이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나이 셈법은 세는 나이다. 그러나 병원, 공공기관 등에선 국제 표준인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어 혼선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1993년 8월생의 경우, 2022년부터는 세는 나이로 30세가 된다. 만 나이로 계산하면 28세고, 연 나이로는 29세가 된다.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불편을 토로한다. 평소에는 세는 나이를 사용하다가 공문서를 작성할 때만 되면 '내 만 나이가 몇 살이지'라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만 나이 계산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름만큼이나 기본적인 정보를 기재할 때조차 번번이 헷갈리고 확인을 해야 하니, 때에 따라서는 성가시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만 나이를 표준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외국 사람과의 소통에도 종종 불편이 생긴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세는 나이를 '코리안 에이지(Korean Age)'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당 키워드를 검색하면 한국식 나이 셈법이 헷갈리고 혼란스럽다는 게시글도 다수 발견된다. 한 한국인 누리꾼은 "다른 문화권 친구들에게 한국 나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며 "대부분 외국인 친구들은 어떻게 나이가 3개일 수 있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고 토로했다.
세는 나이는 과거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썼던 셈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는 나이의 유래는 아기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이를 먹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 1세로 인정했다는 설, 동양에는 '0'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태어난 해를 1세로 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196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만 나이를 쓰는 것이 정착됐고, 일본 역시 1902년 관련 법령을 개정해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세는 나이를 쓰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만 나이 표준화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인 편이다. 스타트업 뉴닉이 지난해 12월 '만 나이 표준화'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2021명 중 "만 나이 표준화에 찬성한다"고 답한 사람은 83.4%(1686명)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12.8%(258명), 기타는 3.8%(77명)로 집계됐다.
그러나 여전히 세는 나이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에선 나이를 기준으로 호칭이나 서열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아, 만 나이로 표준화했을 경우 또 다른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세는 나이가 이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고, 하나의 고유한 문화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문가는 나이와 관련된 이슈들이 과도한 연령주의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사회학자 교수는 "만 나이 표준과 관련된 논란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언급됐지만 결과적으로 변하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로 위계가 결정되거나 차별하는 연령주의가 여전하다는 것이고, 그런 부분이 개선돼야 하는 문제"라며 "만 나이를 표준화하겠다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독려할 것인지 그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