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지난 19일 영아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도 오산시의 한 의류수거함에 27일 오전 추모 메시지와 물품이 놓여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경기 오산에서 친모가 갓난아기를 의류수거함에 버려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친모는 남편 모르게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자신의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버리는 '영아 유기'의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보호출산제' 등 아이와 산모 모두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아 유기·살해 사건 연평균 130건 이상…끊이지 않는 비극
경기 오산경찰서는 지난 26일 갓난아기의 친모인 20대 A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8일 오후 5시20분께 오산시 궐동 한 의류수거함에 자신이 출산한 남자 아기를 버리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아기는 친모로부터 버림받은 뒤 하루가 지난 19일 오후 11시30분께 한 남성에게 발견됐다. 당시 아기는 탯줄이 달린 채 숨진 상태였으며, 몸은 수건에 싸여 있었다.
경찰은 의류수거함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분석해 A씨를 자택에서 검거했다. 붙잡힌 A씨는 경찰에 "남편 모르게 임신해 낳은 아기였다. 이를 숨기기 위해 의류수거함에 버린 것"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아기의 정확한 사망 원인 및 시점, 유기 당시 아기가 살아있었는지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영아 유기 사건이 발생한 경기 오산 한 의류수거함에 붙은 추모글 쪽지. / 사진=연합뉴스 TV 캡처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지역사회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번졌다. 아기가 발견된 의류수거함에는 "어른들이 미안해", "하늘에서는 행복하기를" 등 아기를 추모하는 문구가 쓰인 쪽지·피켓 등이 놓이기도 했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모친 스스로 버리는 '영아 유기'의 비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8월에는 충북 청주시 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아기가 길을 걷던 행인에게 발견돼 기적처럼 목숨을 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던 아이는 목 등에 심한 상처가 있었고, 피부는 괴사했으며 패혈증 증세까지 보이는 등 위급한 상태였다. 그러나 약 50일에 이르는 치료를 받은 끝에 몸을 회복했고, 현재는 입양 등 절차를 진행하는 보호시설로 이송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1월에는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영아를 유기한 혐의를 받는 B씨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B씨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의 화장실에서 혼자 딸을 출산한 뒤, 공장 인근 텃밭에 아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당시 B씨는 경찰에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청 집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신고된 영아유기 건수는 1271건, 살해 건수는 110건을 기록해 총 1381건에 달했다. 연평균 130건이 넘는 영아 유기·살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에 아기 버려…입양 막는 현행 제도도 문제
어째서 친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혹은 살해하기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는 대부분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곤란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친모들이 주로 영아 유기 범죄를 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연합뉴스
주사랑공동체는 유기 위험에 처한 아기들을 임시 보호하는 시설인 '베이비박스'의 설립과 운영을 맡고 있다. 주사랑공동체 측은 그동안 베이비박스 시설에 도움을 청한 친모들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성폭행·혼외 관계 등 원치 않는 임신으로 출산 △출산 후 가족과 사회로부터 편견과 고립 경험 △양육을 하는 데 경제적으로 곤란 △입양의 어려움 △장애아 출산으로 사회적·경제적 어려움 등의 문제를 겪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아 유기의 대부분은 한부모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이용자들 대부분이 미혼모이거나 한부모 가정인데, 임신 출산 양육 등 일련의 과정을 여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등 고립을 경험했다고 한다"며 "이런 문제들은 여자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미혼모, 한부모 여성가장 입장에서 자녀의 입양을 택하기 힘든 사실 또한 영아 유기가 늘어나는 간접적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입양특례법 제11조에 따르면, 아이를 입양하려는 양부모는 아동의 출생신고 증빙 서류 등을 갖춰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출생신고는 친생부모가 아이의 출산 후 1개월 이내에 하도록 되어 있다. 입양기관은 친생부모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그들의 인적사항을 제외할 수 있지만, 신원 정보 노출에 극히 민감한 산모 입장에서는 그것 만으로도 큰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와 관련, 주사랑공동체 측은 "출생신고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유기하게 됐다"고 응답한 여성이 전체 편지 중 43%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출생신고제 아닌 보호출산제로 가정 보호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시민단체들은 '보호출산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보호출산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산모의 '익명출산'을 정부가 돕는 제도를 뜻한다. 독일 등 일부 유럽 선진국에서는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한 조처로 지난 2014년 보호출산제를 도입한 바 있다.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가 설치한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 유기 위험에 처한 영아를 대신 받아 임시 보호하는 시설이다. / 사진=연합뉴스
전국입양가족연대·한국고아사랑협회 등 여러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2월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무조건적인 '출생신고제'를 강제해 왔고, 이로 인해 수많은 아이가 유기되거나 사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무사히 살아남은 아이는 제때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를 잃고 시설로 가야했고, 새로운 가정으로의 보호조치는 극히 일부에게만 허용되는 '로또복권'이 됐다"며 "보호출산제는 이런 비정한 현실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가정 보호 우선원칙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또한 영아 유기 근절 정책의 일환으로 보호출산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 정부서울청사에서 '포용적 가족정책 모색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여러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과 함께 아동의 출생신고 서류 등에서 친모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김경선 여가부 차관은 당시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하고 있으나 현행법과 제도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며 "다양한 가족을 포용해 정책의 사각지대 없이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