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기자
[나폴리(이탈리아)=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과 전기차로의 전환을 골자로 한 탄소중립 이슈가 글로벌 차 산업계를 덮친 가운데 과도한 목표 설정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가장 핵심인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 구축에만 전 세계적으로 오는 2030년까지 최소 3000억달러(약 357조원)의 투자 비용이 들어갈 전망인데, 각국의 준비가 미흡한 상황에서 전기차 중심의 급격한 생태계 전환으로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과 중국 등 자국 기업에 유리한 보조금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를 타깃으로, 친환경차 인센티브를 둘러싼 공정성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18~19일(현지시간) 열린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OICA) 총회는 전 세계 탄소중립 정책 과속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스테파노 아베르사 매니징 디렉터는 "유럽에서는 향후 5년 동안 전기차에만 3300억달러(약 392조원)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며 "전기차 전환은 배터리와 e-파워트레인 등 원가가 높은 부품 사용의 비중을 늘려 내연기관차 대비 생산 비용이 최대 59%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요인이 자동차 판매 가격 상승과 소비자 구매력 감소로 이어져 시장 위축을 불러오고 궁극적으로 완성차 제조사의 수익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컨설팅 업체의 진단이다. 알릭스파트너스가 올해 전기차 구매 시 가장 우려하는 대목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는 짧은 주행 가능 거리(42%), 부족한 충전소 인프라(41%), 비싼 차량 가격(30%) 등을 꼽았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한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일본·중국 등 OICA 회원국은 탈탄소화를 위해 전기차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나 동력계 관련 기술 중립성 문제나 충전 인프라 부족, 일자리 축소 등 부정적 측면도 상당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유럽을 필두로 주요 선진국이 2035년 이후, 2040년을 전후로 내연기관차 전면 퇴출을 공식화하면서 전기차를 대안으로 제시한 데 대해 자국 내에서조차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EU에서는 전기차로의 급전환은 완성차와 1차 협력사 종사자 38만명 중 약 25만명, 하위 협력사에서 15만명 등 총 40만명의 일자리를 앗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은 앞서 영국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관련 영국자동차산업협회(SMMT)가 주최한 사전 라운드테이블 콘퍼런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클 호스 SMMT 회장은 OICA 총회 토론에서 "각국 정책 당국자들은 무공해차 전환 가능성과 업계 상황 등 냉정한 진단 없이 일종의 슬로건성으로 탄소중립 주장을 반복하고 있어 과도한 목표에 대한 속도 조절과 달성 가능성이 낮은 공약에 업계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대표로 참석한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회장은 미국과 중국 등을 겨냥해 자국산과 수입산 차량에 대한 동등한 인센티브 정책을 촉구했다. 정 회장은 "한국 전기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약진은 지난해 보조금 중 34.4%를 수입차에 제공하는 등 국내산과 수입산 간 차별 없는 우대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탄소중립이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등 특정 기술을 억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동력계 기술 중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통 의견도 나왔다. 2035년 이후에도 하이브리드차 등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전기차에 편향된 탄소중립 과속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수소연료전지로 움직이는 수소전기차 등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OICA 회원국은 이번 논의 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2~3주 이내 교통 분야 탈탄소화의 속도 조절 관련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낼 예정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미국자동차혁신연합을 이끄는 존 보젤라가 새로운 회장으로 선출됐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