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취업시장은 여전히 '문송합니다'…코딩학원 문 두드리는 문과생들

취업 시장서 부진한 문과생 구직자
속성 코딩 학원서 '경력 전환' 노려
취준생 10명 중 6명 "코딩 학습 의향 있다"
전문가 "비전공자, 처음부터 실력 뛰어날 수 없어"
"대기업 노리기 보단 착실하게 경력 쌓아야"

이른바 '코딩 학원' 등 취업 전문 사교육 기관이 밀집된 서울 강남구 한 학원가.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전역하고 졸업할 때가 다가오니까 불안해지더라고요. 코딩이라도 배워야겠다 싶었죠."

27일 서울 강남역 인근 학원가에서 만난 20대 A씨는 최근 속성 프로그래밍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그는 이번 학기에 복학하는 대신 코딩 학습에 전념할 계획이다. A씨는 "동년배나 선배들이 취업 준비 중인데 다들 어려워하는 걸 보고 졸업장 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라며 "일단 기초 지식을 쌓고 IT기업 인턴이라도 해보면서 경력을 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비대면 추세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문과 출신 청년들의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기존에는 '문과 직업'으로 여겨져 왔던 은행부터 유통, 광고업 등에서도 IT 기술을 보유한 사원들을 선호하고 있다. 과거 유행했던 '문송합니다(문과생+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가 현실이 됐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청년들은 단기간에 프로그래밍 학습을 시켜주는 '속성 IT 학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문과 출신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기초 코딩 교육을 받고 처음부터 경력을 쌓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대치동을 비롯한 강남 일대는 학생은 물론 대학생,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코딩 학원'의 메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강남역 인근에만 대형 IT 전문 학원이 세개 이상 밀집돼 있었다. 정부로부터 국비를 지원받아 비전공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교육을 제공하는 곳도 드물지 않았다.

취업난에 '코딩'으로 발 돌리는 문과 출신 청년들

청년들이 코딩 학원에 발을 들이는 이유는 취업난 때문이다. 올해 졸업을 앞두고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는 대학생 B(26)씨는 "하도 주변에서 문과는 취업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코딩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라며 "요즘 같은 시대에 문과는 공무원 아니면 코딩 배워서 개발자 되기, 두 선택지밖에 없다고 한다. 솔직히 저도 제가 옳은 선택을 한 건지 불안감이 든다"라고 토로했다.

네이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옥. 디지털 전환이 강조되면서 IT 기업에 대한 구직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취직에 성공했지만 박봉·격무 등에 시달리다가, 훨씬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개발직으로 경력을 전환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마케팅 업체에 취직했으나 1년 만에 관뒀다는 C씨는 "아주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배울 수 없겠지만, 기초 데이터 과학만 배워놔도 취업 시장에서 평가하는 눈이 달라진다고 들었다"라며 "쥐꼬리 만한 월급과 야근에 계속 시달릴 바엔 차라리 지금 고생해서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과생이 취업 시장에서 부진한 것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앞서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2019년 발간한 '월간 노동리뷰,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에서 인문계열을 전공한 취업준비생(취준생)의 취업률은 56.0%로 전체 계열 중 가장 낮았다.

이들은 월급도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 박봉이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인문계열 전공자의 월 평균 초봉은 220만원으로, 전체 평균인 250만원보다 약 30만원가량 낮았다. 온라인상에서는 문과생들이 취업 면접마다 빈번히 탈락하는 상황에 빗대 '문송합니다'라는 자조적인 유행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는 문과 취준생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었다. 사회 전반의 비대면 서비스화가 강조되면서 IT와 관련된 기술을 가진 인력이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가 2030세대 대학생·구직자 7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 중 59.6%는 '기회가 있다면 코딩을 배우고 싶다'고 응답했다. 구직자 10명 중 6명은 경력 전환을 고려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부터 실력 좋을 순 없어…목표 현실적으로 잡아야"

정부 또한 '국민내일배움카드' 등 국비를 이용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구직자와 재직자들에게 훈련에 필요한 학습 비용의 약 45~85%가량을 지원하는 제도다.

한 남성이 독서실에서 취업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는 정부의 적절한 지원은 물론, 구직자의 현실적인 목표 설정과 끈기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국내 한 사이버 보안업체 관계자는 "문과 출신 구직자가 '네카라(네이버·카카오톡·라인 등 국내 유명 IT기업)'에 취직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IT 직군은 아직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넘치기 때문에 비전공자도 실력만 있다면 충분히 경력 전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국비 지원을 받는 속성 강의 등으로 개발자가 된 경우에는 처음부터 실력이 좋을 수 없다 보니, 자신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작부터 유명 기업 취업에 집착하기 보다는 경력을 착실하게 쌓아 이직하는 방식을 추천한다"라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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