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로 자기소개하시오'…채용 시 성격유형 반영하는 기업, 난감한 취준생들

"MBTI가 자격증인가…" 부담 늘어난 취준생들
전문가 "MBTI, 사람 선발할 때 활용할 객관적 지표 아냐"

선호하는 지원자의 MBTI 유형을 명시해 놓은 한 식자재 유통 기업 채용 공고./사진=잡코리아 캡처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최근 일부 기업이 신입 사원 채용 시 지원자의 'MBTI 성격유형검사' 결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소개서(자소서) 항목으로 '자신의 MBTI 유형을 소개하라'는 내용을 넣은 기업이 있는가 하면, 선호하는 지원자의 MBTI 성격유형을 채용공고에 명시해 놓은 곳도 있었다.

단순히 재미로만 생각했던 MBTI 검사가 실제 기업의 면접 자료로 활용되면서 취업준비생(취준생)들에게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는 MBTI는 개인이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될 수 있지만, 기업이 사람을 선발할 때 활용할 객관적 지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은 최근 진행한 대졸 신입 사원 공개 채용 자기소개서 항목 중 하나로 '자신의 MBTI 유형을 소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사례를 들어 소개하시오'라는 질문을 넣었다.

MBTI는 사람의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한 성격유형검사로, 주의초점·인식기능·판단기능·생활양식 등 4가지 지표를 각각 외향형(E)·내향형(I), 감각형(S)·직관형(N), 사고형(T)·감정형(F), 판단형(J)·인식형(P)으로 나눠서 알려준다. 지난해부터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자신이나 타인의 성격·성향을 예측하는 데 활용됐다.

취준생 박모씨는 아워홈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보고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씨는 "내 MBTI는 활발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지 않는 유형에 속해 평소 주변 사람에게도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다"라며 "그런데 회사에 입사할 때도 MBTI를 적어 내야 하고, 이걸 토대로 자소서까지 써야 한다니 솔직히 무슨 내용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MBTI가 그다지 신뢰할만한 자료는 아니지 않나"라며 "검사를 다시 할 때마다 결과가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데, 이걸 가지고 사람을 뽑을 때 활용한다는 건 좀 지나친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아워홈 인사담당자는 "MBTI라는 재미있는 요소를 풀어서 창의성 있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해보라는 취지로 만든 항목"이라며 "MBTI 결과로 직무 적합성을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원자가 작성한 본인의 성격과 추후 면접에서 보이는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직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한 구직자가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기업은 채용 공고에 선호하는 지원자의 MBTI 유형을 명시해 놓기도 했다. 최근 식자재 유통 관련 A기업이 배달 업무를 담당할 직원을 뽑기 위해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린 공고문에는 '선호 MBTI : 재기발랄한 활동가, 엄격한 관리자, 만능 재주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재기발랄한 활동가, 엄격한 관리자, 만능 재주꾼은 MBTI 유형 중 각각 ENFP, ESTJ, ISTP 유형을 설명해 놓은 말이다.

최근 취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구직 시 기업으로부터 MBTI 검사결과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는 누리꾼들의 경험담이 다수 올라왔다. 이 중에서는 MBTI 검사 결과 때문에 아르바이트 지원 자격에서 탈락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누리꾼 B씨는 "편의점 공고가 올라왔길래 연락을 했더니 (점장이) '혹시 MBTI가 뭐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INFP로 나왔다'고 대답했더니 '그 MBTI는 편의점 알바랑 안 맞는다고 한다. 죄송하지만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며 자신이 겪은 경험을 털어놨다. B씨는 "여러분도 MBTI 따지는 점장 만나보셨냐"라며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고 토로했다.

일부 취준생들은 MBTI를 요구하는 기업 때문에 부담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20대 취준생 김모씨는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관이 MBTI가 뭐냐고 물어봤다. 나는 MBTI에 관해 별로 관심도 없고 믿지도 않는 편이라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마치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인 것처럼 쳐다보더라"라며 "MBTI가 무슨 자격증 같은 것도 아닌데 이런 것까지 왜 설명해야 하는지 싶다"고 했다.

전문가는 MBTI는 개인이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자료는 될 수 있지만, 인재를 선발할 때 기업이 활용하는 것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MBTI 유형에 대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해설은 축약된 버전으로, 흥미 위주로 정리된 것이지 무언가를 진단하거나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어렵다"라며 "회사에서 지원자에 대한 어떤 정보를 요구할 때는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특정 MBTI 유형을 선호한다고 명시하는 것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MBTI를 활용한 자소서 역시 지원자에겐 그것에 맞춰서 쓰려고 하면 상당히 부담이 될 수 있다"라며 "모든 사람이 MBTI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지원자의 창의성에 측면을 검토하고 싶은 거라면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 자유롭게 기술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취지에 더 부합한다"고 말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팀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