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정부와 공공기관 사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소비자에게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인 전기, 도로, 철도는 민간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이 제공한다. 이처럼 정부 자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업도 아닌 중간적인 형태의 조직이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정부의 투자, 출자 또는 재정지원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이며,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공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직접 생산하여 공급하는 기업체 형태이나, 준정부기관은 기업적 성격보다는 정부의 업무를 위탁해서 집행하는 성격이다. 다만, 자체 수입이 50% 이상 되어야 공기업이 된다. 기타 공공기관은 수입 기준의 적용이 적절하지 않거나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설립된다.

대표적인 공공기관으로는 한국전력, 도로공사, 철도공사, 국민연금 등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기관들이 있는데, 부처별로 보면 2021년 3월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47개, 산업통상자원부가 40개, 문화체육관광부가 32개, 국토교통부가 28개, 보건복지부가 27개, 교육부가 20개 등의 총 350개의 공공기관이 지정되었으며, 직원은 작년 말 기준 행정부 공무원 110만6552명의 40%에 이르는 40만9374명이다. 이처럼 엄청난 숫자의 공공기관이 정부의 업무를 보조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대부분을 실제 집행하는 곳은 공공기관이며, 이에 따라 국민이 정부의 정책을 직접 체험하는 곳도 공공기관이다.

현행 법제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을 보장하기 위해 기관장에 대해서 3년의 임기를 보장하는 등 공공기관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도 공공기관에 자율성과 책임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이 없다면 공공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상은 어떨까. 필자의 경험으로 공공기관 경영실적의 상당 부분은 부처의 정책을 집행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의 집행실적만이 아니라 정부정책 입안을 포함한 전체 정책과정을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또한 공공기관의 직원은 사실 해당 분야에 오랜 기간 근무하기 때문에 보직이 자주 바뀌는 공무원보다 전문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전문성은 정치권과 부처에서 내려오는 낙하산 인사의 정치적 입장과 모든 사항에 대한 보고와 승인을 원하는 부처 공무원들의 성향에 의해 무시되곤 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보다 더 영혼 없는 공공기관 직원이 되고 있는 셈이다.

분업이 꼭 횡적인 경우에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종적인 경우에도 업무의 성격, 범위에 따라 분업이 가능하다. 정책 방향은 부처가 결정하더라도 세부적인 지침은 공공기관이 정하도록 하고 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더구나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정책문제가 점점 많아지는 시대에 정부, 공공기관 간 협력적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후자가 전자의 손발만 되는 사이가 아니라 두뇌도 되는 사이가 돼야 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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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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