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영기자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발표를 전후로 정치권에서 탄소세 도입 논의가 쏟아지면서 재계에선 산업 경쟁력 훼손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 기업에 대한 탄소세 부과로 제조원가 부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작 재원은 선심성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세 자체에 대한 부담 뿐 아니라 탄소중립 전환에 쓰이지 않을 경우 EU 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인도 등 여타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계는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 EU 등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를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대폭 상향 필요성, 탄소세 신설 논의 등의 트리거로 삼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 주장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EU는 전체 수출시장의 10% 불과=2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對) EU 수출액은 314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3032억4000만 달러)의 10.4% 비중을 차지한다. EU는 주요 수출 시장이지만 1, 2위 수출국인 중국(25%), 미국(15.3%)과 아세안(16.3%) 보다는 비중이 낮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부 정치권, 환경단체 등에서 EU CBAM 도입을 계기로 우리도 탄소세를 신설해 기업이 차라리 국내에서 세금을 납부토록 하자고 주장하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며 "우리 기업의 제품은 EU 뿐 아니라 동남아, 인도, 미국 등 다른 시장에도 수출되는 만큼 전체 수출시장에서의 경쟁력까지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3월 '탄소세 법안',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이달 12일 '정의로운전환기금 설치에 관한 법률'을 발의해 탄소세 신설 논의를 점화했다. 국내에 수입되는 외산 제품에도 탄소세를 부과하고, 우리 기업의 수출품에 대해선 탄소세를 환급해주겠다는 게 의원실의 설명이지만 기업들은 쉽지 않을 걸로 보고 있다.
국내 주요 철강기업 관계자는 "국내에 들어오는 중국 제품에 탄소세를 부과할 경우 무역보복조치를 부를 수 있는 등 기업 입장에선 더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며 "결국 탄소세 부과를 피해 해외에서 제품을 만들게 될 거고 전 세계적으로 배출되는 탄소량은 줄지 않는데 우리 산업의 경쟁력만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기업들이 탄소배출 규제가 강한 나라에서 약한 나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카본 리키지'만 가속화 할 수 있단 것이다.
◆호주는 탄소세 폐지했는데…우리는 환경비용 부담 상승 우려=실제로 해외 국가 일부는 탄소세를 도입했지만 기업의 환경비용 부담 가중과 소비자에 대한 부담 전가로 인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호주의 경우 지난 2012년 7월 탄소세를 도입했지만 이후 호주 내 광산, 에너지, 유통기업 및 최종 에너지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시행 2년만인 2014년 7월 탄소세 제도를 폐지했다.
탄소세를 도입한 국가들도 우리와는 달리 대부분 제조업 의존도가 낮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유럽 국가들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5개국이 탄소세 제도를 시행 중이고 이 중 17개국이 유럽이다. 유럽 내에서도 국가별로 차이가 커 스웨덴은 탄소 배출량 t당 119달러를 탄소세로 부과하지만, 유럽 내 생산기지 중 하나인 폴란드의 경우 t당 1달러 미만이다.
기업들은 국내외 탄소 규제 강화 논의에 기대보다는 환경비용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EU가 지난 14일(현지시간) CBAM 도입 방침을 밝히고, 국내에서도 탈탄소 규제 논의가 본격화 되면서 올 들어 안정적으로 움직였던 탄소배출권 가격도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 급등했다. 'KAU20' 기준으로 배출권 가격은 올초만 해도 2만~3만원대를 형성하다가 하락해 지난달 23일 1만1550원을 기록했는데 불과 한 달 만인 이달 23일 2만1100원으로 뛰었다. 배출권을 본격 사용하는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가격이 상승할 걸로 예상됐는데, 국내외 환경규제 강화 움직임도 배출권 거래 시장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범부처 탄소중립 정책 컨트롤타워인 탄소중립위원회는 오는 10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7년 대비 24.4%에서 추가로 상향할 예정인데, 향후 상향폭에 따라 배출권 시장이 더욱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