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기자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이른바 'n번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조주빈(왼쪽)과 미성년자를 성추행하고 성 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한 혐의를 받는 최찬욱(오른쪽)./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미성년자를 성추행하고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최찬욱(26)이 24일 취재진 앞에 얼굴을 드러냈다. 최씨 이날 "어른들이 구해줘서 감사하다"며 준비한 듯 또박또박 심경을 말하는가 하면, 스스로 마스크를 내려보이는 등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선 최씨의 모습이 성 착취 영상을 만들어 메신저 텔레그램에 유포한 일명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과 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김태현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은 하나같이 피해자와 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표정과 태도에서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 특징을 보여 비난에 쇄도하고 있다.
범죄 심리 전문가는 이들에 대해 사이버 공간에서 전지전능하게 사람들을 착취했던 행동이 실제 현실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이날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로 송치되면서 대전 서구 둔산경찰서 유치장 앞에서 취재진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최씨는 2016년 5월부터 최근까지 5년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알게 된 남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성 착취물을 제작하거나 온라인에 있는 미성년자 음란물을 내려받아 보관한 혐의 등으로 지난 16일 구속됐다.
그는 범행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 노예와 주인 놀이 같은 것을 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으로 시작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고 밝히며 "더 심해지기 전 어른들이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안경과 마스크를 벗은 최씨는 자신의 직업까지 공개하는 등 위축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저 같은 사람도 존중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호송차에 올라탔다. 최씨의 '감사' 언급은 온라인에서 "조주빈의 모습이 떠오른다", "뻔뻔하다" 등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김태현./사진=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3월 아동·청소년과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만들어 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주빈도 언론 앞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여 시민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내내 정면을 응시하기도 했다. 현재 조주빈은 항소심에서 징역 42년 형을 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역시 지난 4월 포토라인 앞에서 경찰을 향해 "잠깐만 팔을 좀 놔주시겠어요?"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질문하는 기자들의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스스로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준비한 말을 담담히 꺼냈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당시 현장에서는 탄식이 쏟아졌다.
김태현은 지난해 12월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롤)에서 피해자 중 한 명인 큰 딸을 알게된 뒤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다 집에 침입, 동생과 어머니, 큰 딸까지 세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김태현은 현재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이며, 오는 29일 2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범죄 심리 전문가인 임준태 동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한 방송에서 김태현에 대해 "통상의 범죄자들은 포토라인에 서게 되면 대체로 고개를 수그리거나 말을 잘 잇지 못한다. 김태현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임으로써 시민들을 공분에 싸이게 하는 아주 나쁜 범죄자"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을 언론에 당당하게 보이려고 하는 이상한 반응까지 보인 것을 봤을 때, 기존의 연쇄살인 범죄자나 심각한 범죄자들의 유형으로 설명이 안 되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의 태도에 대해 사이버 공간에서 전지전능하게 사람들을 착취했던 행동이 실제 현실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들은 포토라인에 처음 서고, 형사 절차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유리한지 이해를 못 하고 있을 수 있다"라며 "또 오랜 기간 온라인에서 활동한 사람들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착취하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기에 자존감이 고양되어 있는 상태로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이버 공간에 고립된 젊은이들의 특징인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다만 이들은 재판을 받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도 흘리고 태도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