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현기자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비틀쥬스 역을 맡은 배우 유준상.(사진제공=로네뜨)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배우 유준상(52·사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남달랐다.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와 쾌활함은 마주앉은 이로 하여금 기분 좋은 피식거림을 유발한다. 그러나 자기의 삶과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는 이내 진지해진다. 이미지 포장용 멘트가 아닌 깊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의 말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올해로 연기 26년차를 맞은 유준상이 뮤지컬 ‘비틀쥬스’로 공연계에 돌아온다. ‘비틀쥬스’는 1988년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2019년 4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선보였다. 공연제작사 CJ ENM이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를 따와 오는 18일부터 8월7일까지 한국에서 초연된다.
유준상이 연기하는 주인공 이름도 비틀쥬스다. 비틀쥬스는 98억년 동안 이승과 저승에서 홀로 산 유령이다. 괴팍하면서 우스꽝스럽고, 기괴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다. 비틀쥬스가 어떤 계기로 인간세상에 잠시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극의 핵심이다. 유준상은 비틀쥬스에 대해 "따라다니면 재밌을 것 같지만 가끔 진짜 무서운 캐릭터"라며 "한국으로 치면 도깨비 정도가 아닐까"라고 소개했다.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비틀쥬스 역을 맡은 배우 유준상.(사진제공=로네뜨)
유준상은 비틀쥬스라는 캐릭터 분석에만 4주의 시간을 쏟았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아침마다 산에 오르며 극의 전체적인 흐름과 대사를 외웠다. 그는 "지독한 외로움 끝에 인간세계로 나온 유령이라면 인간과 어떤 모습이 다르고 또 같을까 끝없이 고민했다"며 "레플리카(모작)의 경우 단순히 배역을 모방하는 데 그칠 수 있어 한국적인 정서로 다가가야 하는 부분도 많이 신경썼다"고 설명했다.
뮤지컬만 17년이나 해온 베테랑인 그도 ‘비틀쥬스’ 연습 기간만큼은 여느 작품보다 고통스러웠다. 극의 전개 속도가 빠른 데다 정확한 타이밍이 요구되는 연기가 많아서다. 그는 "1초, 0.5초, 심지어 0.3초라는 찰나의 순간에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훈련 반복이 가장 힘들었다"며 "연습을 시작하고 3~4주째 됐을 때 ‘내가 이걸 왜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이어 "연습 막바지인 지금은 작품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체력적으로 오래하긴 힘든 작품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습 과정이 타이트한 만큼 작품의 완결성과 신선함은 그가 보증하는 독보적인 매력이다. "배우의 동작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조명 등 모든 것을 한 번의 큐로 맞추지 않으면 공연이 흘러가지 않는다. 스태프나 배우가 그 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모든 게 멈춰버린다.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철저함은 내게 가장 큰 신선함이었다. 이런 것들을 무대에서 구현해 관객에게 선보일 생각에 벌써부터 신나고 설렌다. ‘저 세상 텐션’의 무대를 보여드리겠다."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비틀쥬스 역을 맡은 배우 유준상.(사진제공=로네뜨)
유준상은 영화 연출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영화 연출에 깊이 빠진 영화학도였다. 지난 4월에는 세 번째 장편이자 첫 번째 상업영화인 ‘스프링 송’을 선보였다. 다음달에는 단편영화를 내놓을 계획이다. 유준상은 "배우로서 펼치지 못하는 개인적인 생각들을 나눠보고 싶어 영화도 만들기 시작했다"며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어 힘 닿는 데까지 해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영화 차기작을 위해 최근 ‘죽음’에 관한 주제로 많이 고민했다. 한동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비틀쥬스 연기로 명쾌한 답을 얻었다.
"비틀쥬스는 98억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승에서 외롭게 지낸 존재다. 그는 엔딩 신에서 이승에 와 느낀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연습하는 동안 눈물이 차올랐다. 대사에 극의 핵심 스포일러가 반영돼 있어 구체적인 대사를 언급할 수는 없다. 다만 짧게 툭 던지는 그 대사가 주는 메시지에 분명 관객들도 크게 공감할 것이다. 그 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2시간30분 동안 죽을 힘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는 거다."
배우 유준상은 지난달 한국뮤지컬협회에 1억원을 기부했다.
유준상이 드라마·영화·뮤지컬·연출·MC 등을 종횡무진 누비는 비결은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다. 그는 등산으로 운동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까지 치유한다. "나만의 비결인데 산에 가서 나무와 대화하면 모든 에너지가 생성되는 느낌이 든다. 나무를 잡고 얘기 한 번 해봐라."
작품 일정이 없을 때면 종종 경주로 내려간다.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수묵화의 거장 박대선 화백과 만나기 위해서다. 유준상은 "70년간 그림을 그린 선생님이 아침마다 글을 쓰신다"라며 "그 모습을 보면 ‘내가 아침마다 대본을 쓰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배우는 게 참 많다"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