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대통령 '강제착륙 합당…서방제재는 계획된 도발'

루카셴코, 이날 의회 발언을 통해 국제사회 비판 반박
야권지도자 "벨라루스를 유럽의 북한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수환 기자] 벨라루스가 전투기까지 동원해 아일랜드 국적의 여객기를 강제착륙시킨 이후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해당 여객기의 비상착륙은 합당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26일(현지시간) 가디언지와 도이치벨레 등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의회 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당시 항공기에 이 정보(기내 폭발물 설치 정보)를 기장에게 알리고 이를 공개해야만 했다"면서 "폭발물 설치 여부와 무관하게 테러 위협이 우려된다면 난 당연히 이 여객기를 강제로 착륙시켜야 했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루카셴코 "서방의 제재는 새로운 형태의 현대전이자 계획된 도발"

26일(현지시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의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민스크(벨라루스)=EPA연합

루카셴코 대통령은 또 아일랜드 소속 라이언에어 여객기에 폭발물이 설치돼 있다는 통보를 스위스가 했다고 밝혔다. 앞서 벨라루스 교통부가 폭발물 위협을 신고한 주체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라고 밝힌 점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반면, 스위스 측은 해당 여객기와 관련해 폭발물 위협 통보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어 "당시 항공기가 폭발물 설치가 의심된 상황에서 우리 영토 내 원자력 발전소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며 "유사시 공중 격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전투기를 출격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벨라루스 측이 착륙을 강제한 것이 아니라 여객기 기장이 항공사, 목적지인 빌뉴스 공항 측과 의논해 민스크 공항에 착륙하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빌뉴스에 가까운 지점에서 민스크로 회항한 이유에 대해선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의 공항들이 폭발물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객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이날 자국 공항들이 라이언에어 여객기 착륙 허가를 거부했다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했다. 폴란드 프레데리크 쇼팽 국제공항 공보실은 "지난 23일 아테네-빌뉴스 노선 라이언에어 여객기로부터 비상착륙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항공운항서비스기구 '우크르아에로루하' 측도 "라이언에어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서부 르보프 상공을 비행하는 25분 동안 여객기 기내에서의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또 서방이 제재를 예고한 것에 대해 "혼합형 현대전"을 감행하고 있다면서 자국을 러시아 견제를 위한 "실험 장소"로 치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의 제재 조치를 계획된 도발이라 지칭하며 "적대 세력들이 '레드라인'을 넘어 행동했다. 우리(벨라루스)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만 프라타세비치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루카셴코는 비상착륙 한 여객기에서 해외에 머무는 벨라루스 야권 활동가 라만 프라타세비치와 그의 러시아인 여자친구를 체포한 것에 대해선 "그들이 벨라루스에서 유혈 폭동을 일으키려 모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프라타세비치가 테러리스트 목록에 올라 있으며 그가 운영한 텔레그램 채널(넥스타)은 극단주의 조직으로 인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넥스타는 프라타세비치가 운영하는 야권 성향의 매체다.

이날 루카셴코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우방국 러시아로부터 지지를 받은 데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라이언에어 여객기의 강제착륙은 정당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유럽연합(EU)의 벨라루스 제재가 본격화돼도 러시아가 경제적 지원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루카셴코 대통령은 오는 28일 러시아 소치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 가운데 이번 강제착륙 사건도 논의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야권 지도자 "벨라루스는 유럽의 북한…루카셴코 대통령이 선을 넘었다"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인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는 이날 유럽 의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루카셴코 대통령을 비판하며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벨라루스를 유럽의 북한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루카셴코 대통령이 선을 넘었고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유럽 국가에도 벨라루스 야권에 대한 지지와 연대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앞서 23일 벨라루스 당국은 그리스 아테네-리투아니아 빌뉴스 노선을 운항하던 아일랜드 라이언에어 여객기를 자국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로 착륙시켰다. 벨라루스 측은 이 여객기에 하마스가 폭탄을 설치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비상 착륙시켰다고 주장했다.

비상착륙된 직후 당국은 해당 여객기에 탑승했던 벨라루스 야권 활동가 프라타세비치와 여자친구 소피야 사페가를 체포했고, 이에 국제사회는 벨라루스가 이들을 구금하기 위해 여객기를 납치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EU는 24일 긴급회의를 열어 벨라루스 항공사의 역내 영공 진입 금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제재 조치 시행을 결의했다.

유럽항공안전기구(EASA)는 또 역내 항공사에 벨라루스 영공 비행 중단을 권고했고 KLM·에어프랑스·루프트한자·핀에어·영국항공 등 다수의 유럽 항공사들이 벨라루스 영공을 피해 인근 발트 3국 영공으로 우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치하노우스카야는 이번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벨라루스 내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김수환 기자 ksh205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국제부 김수환 기자 ksh205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