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팔레스타인의 어원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시가지 건물 잔해 모습. 가지지구=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팔레스타인'이란 단어는 원래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철천지 원수로 등장하는 민족인 ‘블레셋’에서 비롯된 말이다. 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오늘날 이스라엘과 요르단, 레바논 일대까지 모두 일컬는 단어였다.

이 지명은 로마제국이 서기 70년 이스라엘 반로마파의 반란을 진압한 뒤, 형식상으로나마 존재하던 유대인들의 독립 왕국인 유대왕국을 없애고 지역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7년간의 난전 끝에 예루살렘을 장악한 로마군은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제국 전역으로 흐트러뜨린 뒤, 다시는 이 땅에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로 유대인들이 원수로 여기던 블레셋족의 이름을 지명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 이 말은 히브리어로 ‘바다 건너 사람’이란 뜻으로 쓰였다. 한마디로 외지인, 이방인이란 뜻이다. 고고학계에서는 블레셋인들과 유대인 중 누가 먼저 이 땅에 당도해 정착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당시 해양무역을 활발히 추진하던 페니키아나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온 사람들로 추정하고 있다. 사실 하나의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유대인과 외교적으로 불화하던 민족은 대부분 블레셋인으로 기록돼있다.

이후 2000여년간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수도없이 바뀌면서 현재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로마제국 당시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아무런 혈연성도 찾을 수 없게 됐지만, 현대 이스라엘은 또다시 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지칭했다. 2000년간 이스라엘 밖에 살던 유대인들이 원주민으로, 그동안 대대로 살아왔던 원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이방인이 된 셈이다.

원래 성지 예루살렘에서는 이방인과 원주민의 구분이 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십자군 원정이 한창이던 중세시대에도 이슬람교와 유대교, 크리스트교 3종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의 방문과 출입은 물론, 상호간 토론도 자유로웠다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도 성지에서만큼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방문을 허용하고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을 엄격히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의 기폭제가 된 ‘성전산’에서의 분쟁이 국제사회로부터 더 비난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당국이 극단적인 유대교 종파들이 중동전쟁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는 ‘예루살렘의 날’ 행사를 이 성전산에서 여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분쟁이었기 때문이다.

성전산 꼭대기에 위치한 황금지붕의 바위모스크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이곳에서 승천했다는 전승을 기념해 만들어진 곳으로, 역사학자들은 마호메트가 어린시절 이곳을 오가며 유대인 랍비들에게 유일신 사상을 배운 것으로 추정한다. 그를 가르친 랍비들도 그를 블레셋인이라며 배척했다면, 세계 3대 종교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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